글로벌 배터리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K배터리 3사가 정부에서 받는 연구개발(R&D) 보조금 규모가 턱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은 수천억원의 지원금을 등에 업고 기술력을 키우고 있지만, K배터리 3사가 지원받은 R&D 정부보조금은 5300만원에 그친다. 전체 R&D 비용 중에서 0% 수준이다. 배터리 업계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R&D 보조금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순 / 각 사
왼쪽부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순 / 각 사
3월 31일 각 사가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K배터리 3사의 전체 R&D 비용(2조 1870억 4300만원) 중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 비중은 0.002%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5300만원을 받았고, 삼성SDI와 SK온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받은 보조금은 지난해 국책과제를 수행한 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급 규모가 줄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9400만원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든 5300만원을 R&D 보조금으로 지급 받았다.

정부가 넋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윤석역 정부 출범 직후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비치기는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제대로 된 지원은 없었다.

정부보조금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R&D 투자액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차세대 기술 확보가 곧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전년 대비 33.9% 늘어난 8760억 5800만원을 집행했고, 삼성SDI도 22.6% 늘어난 1조 763억 5300만원을 투입했다. 올해 처음 사업보고서를 낸 SK온의 경우 지난해 2346억 3200만원을 R&D 비용에 썼다.

정부가 기업의 R&D를 지원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현금성 지원인 정부보조금과 R&D 투자비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다. 2차 전지 산업의 경우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 투자비의 20~30%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배터리 업계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개발을 위해 정부의 R&D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차 전환에 따라 중국은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수천억원의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 주고 있지만, 국내 기업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모자라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인 CATL은 창립초기부터 중국 정부에 1억달러(1391억 5000만원)를 한꺼번에 지원받았다. 이를 계기로 CATL은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동시에 R&D 투자를 확대할 여력이 생겼다.

지난해 CATL은 R&D 투자에 총 155억위안(2조 9000억원)을 썼다. 전년 대비 102% 늘어난 수치다. K배터리 3사의 R&D 투자금을 합친 금액보다 7130억원 가량 더 많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자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배터리사 시장점유율은 57.2%로 K배터리사(23.7%)의 2배를 웃돌았다.

중국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업계와 비교해도 국내 배터리사에 대한 R&D 보조금 지원은 초라한 수준이다. 반도체 사업 비중이 큰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99억 7300만원을 R&D 보조금으로 받았다. 배터리는 반도체와 함께 국가전략기술로 꼽혔지만, 여전히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는 배터리가 향후 ‘제2의 반도체’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만큼 기술 격차를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외시장 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배터리 산업은 연평균 25% 성장해 2025년에는 시장 규모가 18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2025년 169조원 시장을 내다보는 메모리반도체보다 큰 수준이다.

배터리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배터리는 반도체만큼이나 신성장이 될 핵심 산업이다"라며 "R&D뿐 아니라 시설투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확대되는 게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