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하면 많은 사람들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떠올린다. 그의 조력자인 신현성(사진)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테라 탄생의 산파로 권 대표 만큼이나 기여한 이가 바로 신현성 전 대표다.

신 전 대표는 테라의 공동창업자라기보다는 모바일 커머스 티몬(TMON)의 대표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13년전 온라인 유통 시장이 태동하던 시기,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티몬을 만든 그는 인터넷에 이은 ‘제 2벤처붐’의 상징적인 존재다.

벤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2017년 돌연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든 건, 당시 티몬이 처한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비효율적인 온라인 결제 시장의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에서 출발, 궁극적으로는 ‘블록체인의 알리페이’가 되겠다는 것이 시장에 도전한 그의 포부였다.

투자하다 블록체인에 눈 뜬 '소셜커머스 1세대'

1985년생인 신현성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 맥킨지컨설팅에 입사했다. 대학교 재학 당시에도 배너광고 대행업체 등 두 번의 창업을 경험한 그는 맥킨지에 다닌지 1년 만에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본격 창업에 나선다. 2010년 와튼스쿨 동기들과 뭉쳐 시작한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가 지금의 ‘티몬’이다.

타이밍도 그의 편이었다. 티몬 창업 직후 이동 통신 기기로 스마트폰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대대적인 모바일 전환이 이뤄졌다. 인터넷 붐에 이은 2차 벤처 붐을 타고 티몬은 1년만에 국내 3대 소셜커머스 업체로 도약했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빠른 성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국내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치열한 출혈경쟁이 이어졌다. 티몬의 매출은 매년 늘어났지만 적자 규모 역시 커졌다. 6년간 이어진 만성 적자에 IPO(기업공개) 실패까지 겹치며 신씨는 2017년 7월 티몬 대표에서 내려와 의장직을 맡는다.

티몬에게는 내수 시장에 갇힌 한계를 극복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이 시기, 투자 목적으로 처음 가상자산을 접한 신씨는 결제 수단으로서 블록체인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그는 온라인 커머스 시장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승부수가 가상자산 결제라는 발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테라 프로젝트 시작 이후 신씨는 일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티몬이 한 해 신용카드 수수료로 600억원 정도를 지불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수수료 비용을 낮추고 매 결제마다 발생하는 수수료 차익을 사용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 가능성을 블록체인에서 찾았고, 블록체인 기술이 재미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작은 결제 혁신이었다

2017년의 블록체인 산업은 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1년새 10배 가까이 오르고 1000여종이 넘는 가상자산이 등장했다. 투자에서 시작된 관심은 기술 자체로 넘어가 블록체인이 '결제 혁신'을 가져오리라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IT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창업자들은 모두 블록체인을 주목했다.

금융권에서도 블록체인 도입 열풍이 불었다. 금융시스템에 분산원장 기술이 접목되면 이론적으로는 보증, 신탁기관이 없어도 직거래를 할 수 있었다. 낮은 수수료와 빠른 속도라는 장점을 발견한 국내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기술 연구를 시작했다.

신씨 눈에도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다만 가상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쓰기에는 아직 불안정했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전송 수수료를 기존보다 최대 10분의 1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널뛰는 가격이 문제였다. 우선 극심한 가격 변동성을 극복해야 했다.

테라의 구조인 ‘스테이블 코인’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금 같이 일정한 자산에 가치가 고정되어 가격이 변하지 않는 가상자산이다. 당시에는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하면 아직 달러에 묶인 테더(USDT), 스팀달러(SBD) 정도가 전부였고,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쓸모를 만든 디파이(Defi)조차 드물었다.

신씨는 달러, 원화 등 다양한 법정화폐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과 유통 플랫폼의 연계를 계획한다. 가격 안정성이 보장된 가상자산이라면 위험 부담 없이 결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외환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 결제에도 제한이 없어 온라인 커머스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2017년 9월, 신씨는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동문인 최준용씨와 테라의 지주사 격인 컴퍼니빌더인 더안코어컴퍼니를 설립한 뒤 최씨로부터 권도형 대표를 소개받는다. 권씨와 신씨는 2017년 말 ‘베이시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한 장 짜리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일부 엔젤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신사업에 착수한다. 베이시스 프로젝트는 해를 넘겨 '테라 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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