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식품이 신선하다고 할 때에는 부패나 산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품질 손실이 적고 비타민 등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영양소가 그대로 잘 유지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스 등과 같은 음료의 경우 고유의 향미를 유지하고 가열취(식품을 가열하여 조리할 때 생성되는 매우 톡특하고 강한 냄새를 의미함. 우유를 70℃ 이상 가열하면 가열취가 발생하여 비릿한 냄새가 나기도 함)를 막기 위해 열을 전혀 가하지 않고 초고압만으로 살균처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커피의 경우에는 음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생콩을 고온으로 로스팅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어떤 커피를 신선한 커피라고 부를지 의문이 든다. 커피는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생콩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성분이 변화되기 때문에 다른 식품과 같은 기준으로 신선도를 판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커피는 일반 식품과 달리 로스팅 후의 커피의 향미 변화를 기준으로 신선도를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스페셜티 커피가 등장하기 전에는 커피의 향미와 퀄리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스페셜티 커피 등장 후부터는 일반 커머셜커피와 스페셜커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향미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로스팅 후 시간이 경과되면 향미가 차차 사라지고 커피 생콩도 오랫동안 저장하면 특유한 향미가 사라지거나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품질이 떨어진 생콩을 로스팅하여 만든 최종 음료가 맛이 좋을 리가 없다. 따라서 스페셜티 커피 등장 후에는 커피 특유의 향미 보존을 위해 생콩을 최적 보관할 수 있는 저장시스템까지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커피의 향은 가열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또 쉽게 사라지는 휘발성 물질이다. 커피에 있어 향기는 생콩을 볶을 때나 추출을 위해 분쇄할 때 가장 강하게 올라오고 그 후에는 점차 사라진다. 제과점에서 빵 냄새는 빵을 구울 때 가장 강하게 올라오고 그 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 커피를 로스팅할 때 만들어지는 향기 물질은 질소나 황을 함유한 물질이 가장 많고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는 힘이 매우 강하다. 또 역치가 낮아 아주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ppb 수준으로 아주 작은 양의 변화에도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향으로 커피 신선도를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커피의 향기 물질은 휘발성 물질이기 때문에 로스팅 후 끊임없이 방출되어 향기 물질의 손실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커피의 세포 속에 있는 세포벽과 다당류, 지방, 멜라노이딘 등에 의해 어느정도는 향기 물질의 방출이 억제될 수 있다. 지방은 알칼피라진과 같은 친유성물질로 향기를 붙잡는다. 향기물질은 커피 세포구조에서 빠져나와 증발되기 때문에 분쇄되기 전의 홀빈(Whole bean) 상태에서는 여러 겹의 세포벽을 지나 밖으로 나와야 하므로 향기 물질이 서서히 방출되게 된다. 반면 분쇄커피는 향기 물질이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어 공기와 접촉되어 산화가 쉽게 일어난다. 분쇄된 커피는 공기에 노출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향기를 잃어버리고 산화작용에 의해 상한 냄새도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로스팅을 하고 난 후 지속적으로 향미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므로 로스팅 후 원두를 보관할 때에는 밀봉 포장하여 휘발되어 손실되는 향미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향기 물질이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 산화작용에 의해 새로운 불쾌한 향을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원두를 보관할 때에는 특히 산소가 유입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또한 향기를 내는 분자들은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다른 성분과 쉽게 결합하여 반응하게 되므로 향미 보존을 위해서는 반응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낮은 온도로 보관하여야 한다.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커피 보관 중 향기 성분의 변화를 측정하게 되면 신선함의 척도가 되는 향이 사라지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커피 생콩에 들어있는 지질의 산화에 초점을 두어 생콩 보관 중 7주 후부터 나타나는 n-헥사날을 통해 신선함 정도를 연관지어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성분 변화에 대한 농도비율의 측정을 더 신뢰하고 있는 편이다.

로스팅을 하고 나면 원두에 약 1000 여 가지 성분이 남아있는데 그 중 핵심 향기 성분은 28개로 추릴 수 있다. 그 중 메테인싸이올(methanethiol) 프로파날(propanal), 2-메틸퓨란(2-methylfuran), 2-부타논(butanone), 2,3-부테인디온(2,3-butanedione), FFT, 디메틸디설파이드(dimethyl disulfide) 등이 핵심 향기 성분이다. 이 중에서 메테인싸이올이 커피의 신선도 지표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커피의 향은 로스팅 후 2주와 3주 사이에 피크를 이뤘다가 그 후 급격히 소실되어 3주 후부터는 상당부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소실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향기 성분의 변화는 산소, 습도, 빛, 제품상태, 포장상태 등에 따라 많이 좌우되므로 이 조건들을 잘 통제해야 한다. 수분함량이 8%를 넘어가면 흡습으로 인해 분쇄가 건조한 상태에 비해 어려워지고 빛은 산패의 화학작용을 촉매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제품상태와 관련해서는 강볶음일수록 산화작용이 더 잘 일어난다. 포장상태는 어떤 소재로 어떤 방법으로 포장하는가에 따라 신선도 유지기간은 많이 차이난다. 최대 3년까지는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최낙언 ‘커피향의 비밀’
또 원두는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이 일어난다. 보통 된장, 와인, 위스키 등의 경우 오래 숙성될 수록 맛과 풍미가 좋아진다고 한다. 숙성은 자극적인 저분자 물질을 줄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향기는 분자량이 적은 것이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분자량이 적은 향기 물질은 강력한 첫인상을 주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게 느껴진다. 향기 성분의 분자량이 클수록 휘발성이 줄어들므로 감지되는 향도 줄어든다. 대체로 중간크기의 분자가 우아한 향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쓴맛과 떫은 맛은 숙성을 통해 부정적인 맛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산소가 있으면 아세트알데히드의 도움으로 안토시아닌과 타닌의 중합 반응으로 분자량이 커지게 된다. 이는 혀의 미각수용체에 반응을 둔하게 만들어 쓴맛이 사라지게 느껴지게 한다. 따라서 숙성을 통하면 자극적인 저분자의 증발을 줄이고 쓰고 떫은 향미를 덜어줄 수 있다.

하지만 숙성은 로스팅을 통해 만들어진 향을 안정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패도 일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로스팅 후 일정기간은 커피 향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면 점점 품질이 나빠지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앞서 본 그림에서 커피의 향미가 피크를 이룬 로스팅 후 2주와 3주 사이가 커피 향미가 극대화되는 시기이므로 이 시기까지는 시간의 경과는 커피 향미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적절히 보관되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말이다.

보통 커피는 향미를 느낄 때 90% 이상의 향에 의해서 전체의 커피 캐릭터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향기 성분은 원두 속에 비록 소량만 잔존해 있지만 커피의 향미와 캐릭터를 결정짓고 신선도를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커피의 향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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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경 칼럼니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한림성심대학 바리스타음료전공 겸임교수와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다.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와 석촌동에 ‘신혜경 커피아카데미 ‘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 <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