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두 배(5→10%)로 늘려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가 3월 21일 공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해 공식 의견을 제출했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두번째)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 설명을 듣고 있다. / 조선일보DB
한국 정부는 22일 관보에 게시된 의견서 공개본에서 "가드레일 조항을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행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 정부가 규정에 있는 '실질적인 확장'(material expansion)과 '범용(legacy) 반도체' 등 핵심 용어의 현재 정의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우려 기업과 공동 연구나 기술 라이선싱(특허사용계약)을 하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하는 '기술 환수'(technology clawback) 조항이 제한하는 활동의 범위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고도 중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가드레일 규정안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실질적인 확장을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으로 규정했다.
한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의 기준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무부는 범용 반도체를 ▲로직 반도체는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은 18나노미터 ▲낸드플래시는 128단으로 정의했는데 한국 정부는 이 기준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미 연방 관보에 올라온 의견서에서 삼성전자는 '실질적 확장'에 대한 구체적 정의와 설명을 요청했다. '기술 환수'에 대한 용어와 정의 수정을 요구하며 반도체 제조 발전을 위한 국제 연구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도 의견서에서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에 따른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반도체법에 포함된 가드레일 규정을 시행하는 데 있어 향후 논의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이어 "제안된 규정안과 관련된 의견이 포함된 사업 기밀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비공개로 추가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 반도체산업협회(KSIA)도 상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특허사용계약은 '기술 환수' 조항의 '공동 연구'에서 제외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려국과 특허사용계약을 막으면 반도체 생태계에 필요한 일상적인 사업 거래에 지장을 주고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을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는 KSIA의 설명이다.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이전에 체결한 계약에 따라 우려국과 진행하는 공동 연구 등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외국 우려 단체'(foreign entities of concern)의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 수출통제명단에 포함된 기업 등으로 좁혀야 한다고도 밝혔다.
또 미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기업에 민감한 기술·기밀 정보 요청을 자제하고 기업과 기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할 것을 요청했다.
미 상무부는 22일 의견 접수를 마감했으며, 향후 관련 내용을 검토해 연내에 확정된 규정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