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던 현대자동차가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는 동시에 그동안 지나온 길을 되짚는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브랜드 고유의 유·무형 자산과 에피소드를 찾아 나섰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작점에 선 현대차가 과거 도전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역사에서 찾아야 했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IT조선이 현대차의 과거를 알아가며 미래를 본다. [편집자주]

현대자동차 헤리티지(Heritage, 유산)의 시작은 ‘포니’(PONY)다. 1975년 출시된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 ‘포니’(PONY)는 한국 자동차를 전 세계에 알린 첫 번째 차량이다.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 출품 이후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을 시작으로 1982년 60개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외국기업 의존 벗어난 첫 독자 모델 탄생

포니는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조립 생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탄생했다.

현대자동차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1967년 설립 이후 이듬해인 1968년 영국 포드의 ‘코티나’(Cortina) 2세대를 들여와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코티나는 고장이 잦았다. 특히 당시 대부분 승용차가 택시 등 영업용으로 쓰여 고장 문제는 택시 기사들의 영업에 지장을 초래했다.

포드에서 파견 나온 조사단은 한국의 비포장 도로를 문제 삼았다. 비포장 도로에서 차량을 험하게 주행한 탓에 고장이 잦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한국의 도로 포장율은 20% 수준이었다. 포드 조사단의 판단은 코티나를 팔지도 운전하지도 말라는 말과 같았다.

현대차는 독자 제조를 목표로 포드와 합작사 설립에 합의했다. 하지만 1971년 포드가 계약 이행을 미루고 주요 부품 국산화에 대한 약속을 철회하는 등 태도를 보였다. 포드는 당시 중국 진출을 위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토요타의 행보를 지켜보며 현대차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포니는 1975년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현대차가 설립 후 10년이 채 되기 전 첫 독자 모델을 선보였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첫 만남

현대차는 포니 개발 결심 이후 가장 먼저 한 고민은 디자인이었다. 현대차는 이탈리아의 ‘이탈 디자인’(Ital Design)을 찾았다. 1968년 설립된 신생 디자인 회사였지만 창업자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를 보고 결정했다. 주지아로는 당시 피아트의 다양한 모델, 폭스바겐 ‘골프’ 등을 디자인하던 유명 디자이너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조르제토 주지아로(오른쪽)이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조르제토 주지아로(오른쪽)이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차량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포니 디자인 당시부터 수출을 염두했다.

현대차는 주지아로에 1200~1400cc급, 축간거리 2340밀리미터(㎜)가량의 소형차를 요구했다. 특히 새로운 미국 등 선진국 수출을 고려해 새로운 스타일의 차를 원했다. 주지아로는 1973년 10월 스타일 스케치 4종을 완성했다. 현대차는 1974년 2월 현재 알려진 포니 디자인을 택했다.

디자인 스케치부터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디자인 확정 직후 설계에 들어간 뒤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1974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했다. 당시 현대차는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와 포니 쿠페 콘셉트 2종을 선보이며 모터쇼를 찾은 70만명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포니라는 차명은 국민들이 지었다. 국산차를 처음 만드는 만큼 국민들이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국민 공모를 했다. 차명 공모 엽서는 5만8000여통이 도착했다.

현대자동차 ‘포니’가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됐다.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포니’가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됐다. / 현대자동차
심사위원은 여대생이었다. 현대차는 당시 공모 엽서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대생들에게 차명을 투표하도록 했다. 수출 전략 차종인 만큼 젊은이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젊은 감각을 활용했다. 여대생들은 차명으로 포니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경영진은 여대생들의 아이디어를 따라 차명을 포니로 최종 결정했다.

차명부터 판매량·국산화까지 명실상부 ‘국민차’ 등극

포니는 출시 이후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국내 개발·생산, 부품 국산화, 차명 선정, 판매량 등 모든 면에서 국민차 이름을 갖기에 충분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포니’가 생산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포니’가 생산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포니는 1975년 12월부터 양산됐다. 포니는 1976년 단일 모델 기준 1만726대 판매됐다.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 2만4618대의 44% 점유율이다.

이후 1982년 ‘포니2’ 출시 이후 포니1·2의 합산 국내 점유율은 67%에 이르렀다. 포니는 출시 첫해부터 포니1이 단종된 1985년까지 10년 간 국내 판매 1위 모델이었다.

그동안 포니는 포니1·2를 비롯해 포니 택시, 포니 픽업, 포니 왜건, 포니 3도어 등 초기 포니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 모델을 선보였다. 다만 포니 쿠페 콘셉트는 1979년 석유파동 등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1981년 양산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포니의 인기 비결은 내구성이었다. 특히 포니는 한국 지형에 알맞은 차종이었다. 포니는 출시 전 주행시험에서 남산에 올랐다. 주행시험 전 남산에 못 오를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우려와 달리 포니는 남산을 잘 올랐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 고장났다는 코티나와 비교하면 한국인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또 다른 인기 요인은 90% 이상인 부품 국산화율이었다. 부품 대부분을 국내 생산해 수리가 빠르고 저렴했다. 당시 현대차는 포니 부품 90% 이상을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부품 업체에 맡겼다. 당시 국내 기술로 제작이 어렵거나 시장성 낮은 일부 품목만 수입했다.

현대자동차 ‘포니’가 비포장 도로에서 시험주행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포니’가 비포장 도로에서 시험주행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포니는 한국 수출에 초석이 됐다. 포니는 1976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돼 처음으로 해외에 발을 디뎠다.

이후 같은해 7월 에콰도르에 5대 수출을 시작으로 포니, 포니 픽업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 수출 됐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30개국 7427대, 1978년 40개국 1만8317대 등 매년 수출 물량과 국가를 확대했다.

포니는 1982년 7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대를 돌파했으며 60개국에 수출됐다.

포니 쿠페 콘셉트 디자인, 현재까지 지속

포니의 헤리티지는 현재진행형이다. 포니 디자인에서 얻은 영감을 현재 출시된 차량에 적용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 크레이티브 책임자(CCO·부사장),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2022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디자인 토크 행사에서 ‘아이오닉 5’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왼쪽부터)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 크레이티브 책임자(CCO·부사장),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2022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디자인 토크 행사에서 ‘아이오닉 5’ 앞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2019년 미래 전기차(EV)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한 전기 콘셉트카 ‘45’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했다. 차명 45는 당시로부터 45년전 포니 쿠페 콘셉트 공개 이후 현대차가 쌓아온 유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지어졌다. 45의 디자인은 현재 ‘아이오닉 5’ 디자인의 모티브가 됐다.

현대차 N브랜드 전동화 비전을 보여주는 롤링랩(Rolling Lab, 움직이는 연구소)의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차 ‘N 비전 74’ 역시 포니 쿠페 콘셉트 디자인에서 영감받아 디자인됐다.

최근에는 포니 쿠페 콘셉트를 복원했다.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은 주지아로와 그의 아들 파브리지오 주지아로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복원한 포니 쿠페 콘셉트를 처음 공개한 ‘현대 리유니온’ 행사에서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열악한 산업 환경에도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며 "한국, 이탈리아를 비롯해 포니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