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 살인사건에 이어 김남국 의원 코인게이트 등, 올 들어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일탈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규제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데 따른 반작용이라 진단한다. 지난 2017년 이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미래 기술보다는 여전히 ‘코인투기판’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규제의 틀을 갖추고 건전한 시장 문화를 조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현재 적용되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 관련 법안은 2020년 통과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법’(특금법) 개정안이 사실상 유일하다. 지난 2018년 ICO(가상자산 상장) 전면 금지 등 사실상 시장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한 여파는 단순한 금전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4월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는 가상자산 퓨리에버의 투자실패를 빌미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 A씨는 퓨리에버의 홍보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의자는 2020년 지인 소개로 피해자 A씨를 만나 퓨리에버에 9000만원 가량을 투자했으나 8000만원의 손실을 봤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단독 상장됐던 퓨리에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5일 상장폐지됐다.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 3명에게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모씨가 지난 4월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송치되고 있다. / 뉴스1
강남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 3명에게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모씨가 지난 4월 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송치되고 있다. / 뉴스1
주식시장과 달리 가상자산은 발행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다. 거래소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불공정거래 기준도 딱히 없다.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사기성을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퓨리에버는 상장과정에서 코인원 임직원에게 뒷돈을 제공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은 코인원의 상장 담당 임원과 브로커 등을 구속했고, 이들은 최근 공판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인 특금법…불공정 행위 통제 역부족

현행 법과 관련 시행령 등은 지금의 시장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애초 특금법 개정안의 목적은 도박·마약 등에 연루된 불법자금의 범위를 기존에 없던 가상자산까지 포함한 것이다. 거래소와 거래 은행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투자자 보호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목적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번 김남국 의원 사태를 계기로 그 한계가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거액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보유 논란의 김남국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거액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보유 논란의 김남국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뉴스1
김 의원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누군가에게 얻은 미공개 정보를 가상자산 거래에 이용했는지의 여부다. 위믹스나 마브렉스, 비트토렌트, 메콩코인 등 40여종의 코인을 사들인 시점이 저점이거나 상장 직전이었던 것이 대부분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데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을 이용, 시세조종에 가담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가 부랴부랴 준비해 내놓은 법안은 이러한 행위를 처벌할수도, 사전에 방지할수도 없다.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른바 김남국 방지법)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재산 신고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할 것을 골자로 한다. 본인은 물론,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포함, 가상자산을 1원 이상 가지고 있다면 신고 대상이 된다. 당연히 필요한 규제이고, 늦었지만 다행이긴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김남국 의원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기본적으로 코인 중심의 가상자산은 증권도 아니고, 증권성을 인정한다 해도 지분증권(기업의 지분을 표시한 증권)이 아닌,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 미공개 정보 이용금지나 시세조종 금지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하거나 개인끼리 거래할 경우 사실상 추적이 어렵다는 점도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보유 가상자산을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되기는 하지만, 효용은 딱 거기까지"라며 "닥사의 자율규제 뿐만 아니라 규제의 실효성을 다질 수 있는 가상자산 사업자, 이용자 등을 포함한 가상자산 사업 전반에 대한 관련 법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 행위 처벌해 투자자 보호한다는 1단계 법안…"한계 뚜렷"

국회는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2단계에 걸쳐 입법화하기로 했다. 우선 고객자산 보호·불공정 거래 등 이용자 보호 관련 규제를 정리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1단계 법안)'을 정무위 의결한 상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거나 시세 조종을 하는 등, 가상자산시장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할 경우, 형사 처벌 뿐 아니라 손해 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다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이 법안은 이용자 보호(고객 예치금 보호 및 분리 의무),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용자 보호는 이용자 예치금의 신탁과 디지털자산의 보관, 해킹·전산장애 등 사고에 대비한 보험 또는 공제가입과 준비금 적립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불공정거래 규제 부문에서는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 행위, 부정거래 행위를 불공정 거래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법이 작금의 시장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 행위 규제·시세조종 등 처벌 내용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자율 규제 단체에 관한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다.

행정법은 기본적으로 행정의 대상이 되는 사안에 대해 룰을 정립하고 그 룰을 위반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구조다. 현재 법안은 '룰' 없이 처벌 조항만 들어가 있는 ‘절름발이 법’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체적인 행위 규제 입법이 늦어지면서 자율 규제가 입법 공백을 채우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정희 법무법인 디코드 대표 변호사는 "현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통과돼도 시세조종 처벌을 위한 사실상 형사특별법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며 "가상자산 제도와 관련된 2단계 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행정 규제로써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정 기자 uzzon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