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대만 타이베이 난강 전시장에서 진행한 ‘컴퓨텍스 2023’이 막을 내렸다.

‘컴퓨텍스 2023’은 대만 대외무역발전협회(TAITRA, 이하 ‘타이트라’)와 타이베이시 컴퓨터 협회(TCA)가 공동 주최하며, 26개국에서 1000개 이상 기업들이 3000부스 규모로 참여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오프라인으로 열린 컴퓨텍스2023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의 대략 70% 정도 수준으로 규모를 회복했다.

사실 올해 컴퓨텍스에서의 변화는 ‘규모’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와 행사의 ‘방향성’에서 더 중요한 변화의 시점이 되지 않았나 평가된다. 지금까지 컴퓨텍스는 전 세계 ‘PC’ 생태계의 중요한 행사였다. 지난 10여년 간 PC 업계와 컴퓨텍스를 주최하는 타이트라 역시 컴퓨텍스의 방향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 왔다. 이번 컴퓨텍스 2023은 이제 본격적인 ‘다음 스텝’으로 갈 준비를 갖춘 모습이다.

컴퓨텍스 2023 / 타이베이=권용만 기자
컴퓨텍스 2023 / 타이베이=권용만 기자
◇ 컴퓨텍스 상징, PC산업에서 ‘다음 스텝’으로 본격화

지금까지 컴퓨텍스 행사의 상징은 대만을 중심으로 한 ‘PC 산업’이었다. 10여년 전쯤에는 인텔과 AMD, 엔비디아 등 PC 산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기업들이 컴퓨텍스를 기점으로 신제품 발표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PC 산업의 주목도가 떨어지면서, 컴퓨텍스에 대한 관심도 다소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올해의 기조연설 또한 엔비디아가 맡았고, 인텔과 AMD는 아예 컴퓨텍스 기간 중 공식 행사를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을 정도다.

사실 컴퓨텍스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10년 가까이 됐고, 움직임의 시작은 ‘이노벡스(InnoVEX)’ 프로그램의 등장부터로 봐야 할 것이다. 이후 타이트라는 공식적으로 PC 이외에 IoT나 산업용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컴퓨텍스의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컴퓨텍스는 ‘PC’가 중심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재출발하는 컴퓨텍스 2023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기조연설에 등장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PC에 대해 ‘예의상’ 한 마디 정도만 언급할 정도였다. 인텔과 AMD가 빠진 자리에는 Arm과 퀄컴이 들어왔고, PC와는 연이 없을 ‘암페어(Ampere)’도 등장했다. 전통적인 PC 업체의 기조연설로는 에이서 하나 정도를 꼽는다. 바야흐로 기조 연설의 ‘주제’가 바뀐 셈이다.

전시장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컴퓨텍스의 상징과 같던 ‘PC’ 관련에서는 그리 주목할 만한 소식이 많지 않았다. 주요 PC 제조사들은 최신 라인업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이는 PC 생태계와 컴퓨텍스의 ‘디커플링’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물론 메모리나 SSD, 파워 같은 영역에서는 최신 규격에 기반한 제품들로 본격적인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을 위한 ‘GPU 서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졌다. 서버 브랜드들이 최전선에 GPU 서버를 배치하는 것을 넘어, 기존에는 PC 업체로 생각했던 업체들도 서버 솔루션들을 대거 전진배치 시키는 모습이었다. 이 부분에서 제일 적극적이었던 곳으로는, 과감히 부스 절반을 서버로 채운 ‘기가바이트’를 꼽는다.

기가바이트 부스 / 타이베이=권용만 기자
기가바이트 부스 / 타이베이=권용만 기자
◇ AI, IoT 등 기술 특이점 ‘컴퓨팅’ 역량 부각

이런 컴퓨텍스의 변화는 ‘컴퓨팅’의 흐름으로 본다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단순한 계산에서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는 ‘컴퓨팅’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기술 또한 새로운 특이점을 앞두고 있는데, 클라우드는 ‘엣지’로 확장되고, 인공지능은 추론을 ‘클라이언트’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더 늘어나고 있다.

또한 ‘컴퓨텍스’에서 IoT 뿐만 아니라 자동차용 기술이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부분이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서, 센서로 입력되는 데이터를 적절히 처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역량이 필수다. 이에 컴퓨텍스 2023의 ‘베스트 초이스 어워드’에서는 전기차용 충전 시스템이나 자동차용 ADAS 시스템이 수상 제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 컴퓨팅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되고, 컴퓨텍스 또한 ‘PC’에 국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지금까지 PC의 중심이던 x86 생태계를 넘어, ‘이종 가속 컴퓨팅’ 시대로의 본격적인 전환 또한 적극적으로 반영된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변혁’을 몇 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컴퓨텍스 행사 전반에서도 이런 시대의 변화가 크게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PC 생태계, 나아가 ICT 생태계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앞으로의 IT 인프라는 워크로드 유형에 최적화된 프로세서와 가속기를 조합하는 ‘이종 가속 컴퓨팅’ 시대가 될 것이며, PC 또한 이와 비슷한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 정의 시대에 PC 또한 x86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졌다. 향후 컴퓨팅 환경의 변화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을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다시 열린 컴퓨텍스가 행사의 중심을 ‘PC’가 아닌 ‘컴퓨팅’으로 무게 중심을 세운 것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모바일 시대 이후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올라왔을 때, 컴퓨텍스가 이 기회를 잘 잡았다는 평가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