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상자산 평가와 공시 정보를 독점 제공하던 쟁글(Xangle)이 거래소 상장 비리 논란과 관련, 서비스 중단을 발표하면서 업계 후폭풍이 만만찮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가뜩이나 규제 공백 상태인 시장에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한 평가 기관의 업무 중단으로 시장 전체의 신뢰도에 타격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4월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을 댓가로 리베이트를 받은 임직원 2명과 브로커 2명을 기소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이 발행사에 형식적인 외부감사를 받게 하고,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감사업체는 쟁글로 밝혀졌지만, 쟁글은 지난달 공식 입장문을 통해 "상장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뒷돈을 주고받은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의 명확성이 확립되기 전까지 당분간 평가와 공시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히고, 23일부터 가상자산 공시 및 평가 서비스 중단에 들어갔다.

거래소들도 개별 대응에 나섰다. 빗썸은 지난달 21일 공지를 통해 쟁글과 계약을 통해 제공해오던 공시 서비스를 쟁글의 서비스 중단에 따라 종료한다고 밝혔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공백으로 인한 여파가 크게느껴지지 않지만, 발행사들의 입장에서 쟁글 평가가 거래소 상장에 미치는 영향이 컸던 만큼 당분간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를 찾는데 혼선을 빚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코인원 임원 연루 사건 가상자산 리베이트 수수 구조도 / 남부지검
코인원 임원 연루 사건 가상자산 리베이트 수수 구조도 / 남부지검
검증 주체 사라진 가상자산 시장… 정보비대칭 심화 우려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유일무일한 입지를 지닌 가상자산 평가 기관이 서비스를 중단하게 됨에 따라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은 지난 2018년 설립된 국내 최초 가상자산 평가 서비스 기업이다. 업비트를 제외한 빗썸·코인원·코빗 등 대다수 국내 거래소는 지난 2019년부터 쟁글 플랫폼을 사용해왔다.

자체 공시 시스템을 사용하던 업비트는 지난 2021년 공시 제도 시행 2년만에 한 발행사의 허위공시에 의한 논란으로 서비스를 접었다. 이후로는 4대 거래소를 포함한 국내 대다수 거래소가 쟁글의 평가 데이터를 받아왔다.

가상자산 시장은 유가증권시장과 같이 법제화된 공시 의무는 없다. 발행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가 몇 년째 부재한 가운데 쟁글은 기존 증권시장의 검증 체계를 참고해 시장 정보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 만큼 잠시만의 공백으로도 시장의 신뢰도 하락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쟁글의 서비스 중단으로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시선도 있었으나, 거래소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외부신용평가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내비치고 있다.

쟁글의 부재, 시장 신뢰도는 하락중…공신력 있는 감독기관 등장 시급

한편에서는 쟁글의 서비스 중단이 예견된 수순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쟁글은 민간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졌던 만큼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코인원을 비롯해 고팍스 등 국내 일부 거래소는 프로젝트 상장 심사시 쟁글을 포함한 토큰인사이트, 블록와이스레이팅스 등 외부 평가기관으로부터의 심사 데이터를 요구해왔다. 프로젝트 측에는 상장여부가 쟁글의 손에 달려있던 만큼 앞선 리베이트 논란이 놀라운 일 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쟁글 측은 입장문을 통해 "저희가 한 노력들이 잘못된 세력에 의해 남용되거나 다른 악의적 의도로 활용되는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며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대한 대가는 평가 비용의 약 10%수준"이라고 밝혔다.

쟁글이 제공해온 가상자산 공시 정보 / 쟁글
쟁글이 제공해온 가상자산 공시 정보 / 쟁글
다만 쟁글을 대체할 만한 공시기관이 바로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이후 쟁글이 대다수 거래소와 협업을 이어온 만큼 그간 축적한 정보의 양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21년 전북대가 가상자산 관련 법적 표준 마련에 나섰으며, KoDATA(한국평가데이터) 또한 지난해 가상자산 가치평가 시장에 진입했지만 양측 모두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상근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디지털자산 시장은 거래소가 증권사와 상장심사, 평가, 수탁기능까지 맡고 있는 모양새"라며 "공신력있는 신용평가기관을 등장 및 독립시켜 각각의 기능을 부여하고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