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실감형 콘텐츠 생태계 확장에 첨병이 될 수 있을지에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이 등장하면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애플 MR 헤드셋이 메타버스 판을 뒤흔들 ‘게임체인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봤다. 가격과 무게 같은 외적인 문제뿐 아니라 어지럼증(멀미) 같은 내적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플 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사용하는 모습. / 애플
애플 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사용하는 모습. / 애플
팀 쿡 애플 CEO는 미국 5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WWDC)에서 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2014년 애플워치를 선보인 지 9년 만에 등장한 주요 하드웨어 제품군이다. 개발 기간만 7년이 넘는다. 비전 프로의 출시 예정 시점은 2024년이다.

쿡 CEO는 "맥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 시대를 열었다"며 "이제 애플은 비전 프로로 공간 컴퓨터 시대를 선보인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실감형 콘텐츠로 확장하는 스마트폰 생태계

애플 비전 프로는 메타버스 업계에서 많은 기대를 받아온 제품이다.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기술과 콘텐츠 중 실감형 콘텐츠 분야를 더 키울 수 있다고 기대되서다.

실감형 콘텐츠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분야다. 실감형 콘텐츠가 5G 속도를 체감하기에 좋다는 이유다. 2020년에는 메타버스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실감형 콘텐츠가 메타버스 요소기술 겸 메타버스 콘텐츠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좋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감콘텐츠 실태조사 및 중장기 전략 연구에 따르면 MR·VR 등 글로벌 실감형 콘텐츠 시장은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43%쯤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 경기 둔화에 올해 초 생성 AI ‘챗GPT’로 관심이 쏠리며 메타버스와 실감형 콘텐츠의 시장 주목도가 떨어졌다. 이로 인해 메타버스 산업이 침체됐다는 말도 나왔다.

애플 비전 프로는 이런 상황에서 시장의 관심을 다시 실감형 콘텐츠로 돌릴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는 애플이 가진 콘텐츠 생태계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폰, 맥북 등 자체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앱 생태계를 형성해왔다.

아이폰으로 구축한 iOS 생태계가 애플워치와 에어팟 등 웨어러블 기기로 확대된 것처럼 비전 프로가 애플 생태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생태계는 스마트폰 시장을 그대로 따라갈 것으로 분석된다.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이 스마트폰 시장과 비슷해서다.

유지상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의장(광운대 교수)은 "비전 프로는 애플이 만든 OS에 비전 프로를 위한 CPU를 탑재해 애플 공간 컴퓨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기기다"라며 "콘텐츠 앱은 자연스럽게 크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삼성전자가 이 경쟁에 뛰어들면 스마트폰 시장처럼 구글 OS를 쓰면서 삼성전자는 헤드셋 부품을 만드는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애플 비전 프로는 업계 활성화 신호탄

메타버스 업계는 애플 비전 프로가 시장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사실상 확신하고 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을 쏠리게 할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다. 비전 프로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비전 프로는 가격과 무게 같은 문제와 어지럼증 등이 확장성 한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비전 프로는 가격이 3499달러(약 456만원)에서 시작한다. 메타의 차세대 MR 헤드셋 ‘퀘스트3’ 가격 499달러(약 66만원)와 비교하면 7배쯤 비싼 셈이다. 비전 프로가 2024년 출시된다고 해도 비전 프로로 일반 이용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땅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무게와 배터리도 애플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여러 외신은 비전 프로가 현존 MR 헤드셋 중 가장 좋은 성능을 보이지만 다소 무겁다고 지적했다. 비전 프로는 기기에서 배터리를 분리했지만 유선으로 이용해야 한다. 신체 어딘가에 배터리를 소지해야 하는 셈이다. 또 유선 배터리를 사용하는데도 지속 시간은 2시간에 불과하다.

어지럼증도 문제다. 애플 비전 프로는 고해상도 MR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비전 프로가 VR 헤드셋처럼 시야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해상도의 가상 콘텐츠를 보면서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권 실감형혼합현실기술포럼 의장은 "차는 앞으로 가는데 몸은 가만히 있으면서 생기는 감각의 충돌 때문에 차멀미를 하는 것처럼 고해상도 MR 콘텐츠가 이용자의 시야를 따라다니면 감각의 충돌이 생겨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다"며 "애플이 이런 부분이나 가격, 무게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 관련 생태계가 굉장히 빠르게 안정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광 한국메타버스실감콘텐츠협회(KOVACA) 사무총장은 "다양한 기종이 나오면서 디바이스 시장이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콘텐츠 시장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아이폰도 3GS쯤 전 세계에서 아이폰 열풍이 시작된 것처럼 애플이 시행착오를 거쳐 세 번째 세대 기기를 낼 때쯤은 돼야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