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 기기, 소통의 도구인가 양극화의 첨병인가

오국환
입력 2013.04.09 18:20 수정 2013.04.09 18:37

 


지난 연말 치러진
대선. 대개 야당 후보를 지지했던 젊은 층은 선거 결과에 ‘멘붕’을 맛보아야만
했다. 아마도 그들의 뇌리에는 ‘질 수 없는 선거’라는 너무도 명확한 하나의 확신과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비슷한 일은 그보다 앞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벌어졌다. 당시에도 젊은 층은 야당의 압승을 의심해마지 않았다.


 


첨단의 정보가 브로드밴드를
타고 넘실대는 시대. 손에 쥔 스마트폰·태블릿을 통해 더욱 빠르고 적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그럼에도 두번에 걸쳐 치러진 선거는 첨단의 기기를
적극 활용하는 세대의 예측을 연이어 빗나갔다. 전통의 방식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세대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습득하는 세대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데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 태블릿은 소통의 기기?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비단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경제의 양극화, 소통의 단절로 비롯된 세대간
양극화, ‘일베’와 ‘오유’ 사태와 같이 때로는 같은 세대 사이의 양극화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첨단 IT 기기를
새로운 소통의 도구, 정보의 공유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이리 많은 첨단기기와 그보다
더 많은 정보가 흐르는 시대, 어째서 의견 대립은 더욱 끝간 데 없이 치열하고 격렬해
지는 걸까? 분명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어떤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각종 모바일 디바이스가
우리 일상에 파고든 후, 우리는 이 편리한 기기를 통해 어디서나 뉴스를 확인하고
영상을 감상하며, 더욱 빠른 속도의 정보 전파 도구인 SNS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분명 정보의 전달 속도는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빨라졌다.


 


그런데, 이런 급격한
정보화의 물결에 소외된 세대는 어떨까?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생각이겠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 세대간 양극화의 한 원인이 이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목을 끈 ‘뱅뱅이론’


 


이런 사회현상을
설명하고자 최근 ‘뱅뱅이론’이란 재미있는 이론이 등장했다. 딴지일보의 필명 ‘춘심애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이론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도 뱅뱅 청바지를 입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차라리 동대문의 2만원짜리 청바지를 사 입을지언정, 뱅뱅을
구입하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놀랍게도 뱅뱅은 국산과 수입 브랜드 모두를 비교해도
범접하기 힘들 압도적 매출 1위란 역설을 정치 현상에 대입해 풀어낸 명쾌하고 시원한
이론이었다.


 


이는 지난 대선 결과를
분석하는 명확한 하나의 지침이었다. 그런데, 이 이론의 적용 범주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보면, 재미있게도 세대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양극화의 문제 대부분이 이를
통해 풀이된다. 첨단 기기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는 소수와, 그들이 철저히 무시하는
소외된 다수의 상관관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같은 기기를 공유하는
비슷한 세대 사이에는 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대선을 치르며 각종 뉴스를 장식했던
‘오유’와 ‘일베’는 비교적 젊은 층이 접속하는 사이트라는 공통점을 가졌음에도
그 정치적 성향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마치 서로가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일
만큼 양측의 충돌은 격렬했다.


 


첨단 문명의 이기를
손에 쥐고, 방대한 정보를 더욱 빠른 속도로 습득하는 세대에서도 이렇게 의견이
양분되고 있는 것은 분명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또 다른 어떤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자신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둘러보자. 조금 주의 깊게 타임라인을 읽어가면, 나와 연결된, 또는
의견을 주고받는 SNS 상의 사용자 대부분이 평소 사회에 대한 내 지론과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소통 도구라는 SNS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여주고, 그렇지 않은 것을 차단하는 반쪽짜리 정보 소통의 창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로마를 대제국으로
만든 카이사르는 “인간은 항상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명언을 남겼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인용되며 유명해진 이 격언은, 스마트
라이프 시대에 더욱 적절해 보인다. 나와 뜻이 달라 언제고 충돌할 것만 같은
불편한 사람은 멀리하고, 같은 생각을 갖고 동조할 수 있는 사람만을 인맥으로 추가하다
보면, SNS 등 소통의 도구는 어느새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어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IT기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스티브 잡스는 최첨단
IT 기기를 개발하며 ‘인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단순히 빠른 기기, 높은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기기를 구상하고 기능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첨단을 달리는 이 기기들이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소통의 도구가 되기보다 끼리끼리
모여 상대방을 헐뜯고 공격하는 도구가 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 외엔 무시해 버리는 행태는 자꾸만 새로운 ‘양극화’를 불러오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첨단의 IT기기들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을 갖췄다면, 이제 ‘보고자 하는 대로 보는 기기’에서
‘보이는 대로 보는 기기’로 탈바꿈해야 하지 않을까?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사용자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도구의
불리함을 장인의 우수성으로 극복한다는 영국 속담처럼, 언제나 문제의 중심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똑똑한 기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오국환 기자 sadcaf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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