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운동권 출신은 힘들게 졸업을 해도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결과 출판사, 학원과 더불어 정보기술(IT) 업계로 꽤 많이 진출했다. 유능한 프로그래머로 활약했는가 하면, 초창기 PC통신 회사에서 초보적인 채팅방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이 이후 정치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386세대의 등장은 단순히 30대 운동권의 등장이 아니었다. 일찌기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화하는데 훈련된 사람들이다. 이 세대가 자연스럽게 IT를 활용하는 데에도 늘 보수 쪽보다 앞서는 것을 볼 수 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진보진영에는 단일화 협상이 막판에 결렬되자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투표권유, 인증 등의 활동에 적극 나섰다. 마지막 결집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기억 한다. 보수진영은 이렇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인터넷정당이 출현하기도 했다.

2004년에 17대 총선거는 본격적으로 모바일의 활용이 이루어진다. 선거 결과는 단지 노대통령 탄핵 역풍만은 아니었다.

이번 위성정당 창당 과정도 그렇다. 여당 비례정당은 비록 형식적이라 해도 전 당원을 대상으로 모바일투표로 후보를 결정했다. 연령대의 차이인지 배경의 차이인지 판단할 수 없으나 보수 진영은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일어나는 가능성에 대한 이해력과 상상력이 항상 떨어졌다.

댓글 조작 사건만 해도 그렇다. 범죄 여부와 상관 없이 기술적으로 차이가 난다. 한 쪽은 국가 조직을 동원해 사람이 물리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반면에 다른 쪽은 ‘킹크랩’ 같은 매크로를 이용한 무한 반복 가능한 기계적 조작을 시도했다.

탄핵 정국 이후에 보수의 위기가 닥치자 여러 보수진영 유튜버가 등장했다. 처음으로 보수진영이 IT를 더 활용하는 현상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오히려 진영을 착각에 빠지게 하지 않았나 싶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며 듣고 싶은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으로는 표를 늘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21대 총선거에서 보수진영은 다 합해도 110석이 안돼 개헌을 겨우 저지하는 선에 머물렀다. 개헌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국가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 외에는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집권 여당에게 줬다.

특이한 점은 득표율은 엇비슷했는데도 결과에 큰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막판까지 경합한 지역도 수십 군데가 넘었는데 한군데도 야당이 최종 승리하지 못했다. 더구나 공천에서 탈락한 여러 중진들이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여러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나 야당이 선거를 과학적으로 예리하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아니나다를까, 민주당이 빅데이터를 이번 선거에 활용했다는 말이 들린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선거를 더 과학적으로 치르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전화를 통해 묻는 방식의 여론조사보다 소셜미디어 상의 ‘감정분석’(Sentiment Analysis)를 통해 정당, 사건, 인물 등에 대한 평가와 그 변화를 더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계파, 명분, 역사적 평가를 몇 명의 위원과 리더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더욱 경쟁력있는 후보들을 배치할 수 있다.

지역별 선거운동도 그렇다. 빅데이터를 통해 동별, 아파트별 맞춤형 공약을 개발할 수 있다. 유세 동선도 시간대별 주민 이동상황을 분석해 더 많은 사람과 효과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

보수 인사 중에 아직도 피처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꽤 만난다. 사찰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소셜미디어나 채팅 등을 통한 멀티미디어 소통을 아예 접은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신체 연령이 아니라 IT 연령이 젊은 사람들로 바꿔야 한다. 디지털 세상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이끌줄 알아야 한다. 보수진영은 법, 경제, 안보 등의 분야에서 경륜이 더 있는지 몰라도 디지털세상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은 매우 떨어진다. 그러니 보수 진영 스스로 혁신을 가로막고, 유권자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디지털 정체성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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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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