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128단 4D 낸드 SSD ‘SK하이닉스 골드 P31’

최용석 기자
입력 2020.09.23 18:43
대한민국이 메모리 반도체 강국임은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디램(DRAM)은 물론, 낸드(NAND) 플래시 시장에서도 합계 과반이 넘는 점유율로 쌍벽을 이룬다.

그런데 SK하이닉스는 일부 디램 모듈을 제외한 SSD 제품은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다. 삼성 디램 모듈이나 SSD 등은 일반 소비자 시장에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 쉽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의아스럽다. 이는 SK하이닉스가 SSD 제품을 주로 OEM 및 B2B 시장에만 공급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골드 P31 SSD 제품 패키지 / 최용석 기자
그런 SK하이닉스가 일반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B2C용 SSD 제품군을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기자가 직접 구매하고 소개하는 ‘SK하이닉스 골드 P31(이하 P31)’가 그 중 하나다. 올해 8월 미국에 출시한 소비자용 고성능 SSD다.

P31의 공식 사양표 / SK하이닉스
올해 초 CES 2020에서 처음 공개된 P31은 업계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초로 ‘128단 4D 낸드’ 플래시를 사용한데다 64단~96단 3D 낸드 플래시에 머물고 있는 경쟁사와 기술적으로 차별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이론상 적층 단수가 높을수록 부피 대비 용량을 늘리기 쉽고, 용량 대비 성능 및 전력 효율을 높이기에 유리하다.

SK하이닉스 P31의 패키지 구성 / 최용석 기자
제품 패키지는 경쟁사의 고급 제품에 비해 검소하고 단출하다. M.2 규격의 NVMe SSD가 원래 크기가 작은 만큼, 패키지가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 정식 출시가 안 된 제품임에도 겉박스와 사용 설명서 등에는 한글로 된 설명이 사용자를 반긴다. SSD 장착용 나사는 들어있지 않다.

180일 내에 90% 분해되는 재생지로 만든 제품 보호용 내부 트레이(왼쪽)와 생분해성 비닐 포장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 최용석 기자
환경 오염을 고려, SSD 본체가 들어 있는 내부 트레이에 플라스틱이 아닌 재생지를 사용했다. 제품을 밀봉한 비닐 포장도 일반 비닐이 아닌 생분해성 비닐이다. 180일 내에 포장재의 90%가 분해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SSD 본체는 일반적인 M.2 2280 규격의 다른 SSD와 외관상 큰 차이가 없다. 기판의 위쪽 면에 데이터 읽고 쓰기를 담당하는 컨트롤러와 캐시(cache, 데이터를 읽고 쓰기 위한 임시 저장공간) 역할을 하는 디램, 실제 데이터가 저장되는 낸드 플래시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위에 회사명과 모델명이 적힌 라벨이 붙었다. 매끈한 기판 아래쪽에는 용량과 세부 모델명, 시리얼 번호 등의 정보와 각종 인증 마크 등이 기재된 또 다른 라벨이 붙어있다.

P31의 앞면과 뒷면 모습. 양쪽 라벨 모두 방열판 기능이 없는 평범한 라벨이다. / 최용석 기자
표준 규격 제품인 만큼 M.2 NVMe 슬롯을 갖춘 데스크톱, 노트북은 어디든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제품 자체에 ‘발열’ 대비가 전혀 없는 것은 아쉽다. 최근 출시되는 일부 고급형, 고성능 NVMe SSD 제품은 장착 호환성을 희생하더라도 금속제 방열판을 장착해 안정성을 높이고 사용자의 감성까지 충족하는 사례가 흔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소비자용 M.2 NVMe SSD 제품도 발열이 가장 심한 컨트롤러에 금속제 히트 스프레더(열 분산 장치)를 달거나, 라벨 밑에 얇은 금속 방열판을 덧대 발열에 대처하는 모습과 비교된다. 기판도 가장 흔한 녹색 PCB 기판을 사용하다 보니, 형형색색 기판을 사용하는 타사 제품들에 비해 고급스러운 면모는 조금 떨어진다.

P31 1TB 제품의 크리스털 디스크마크 성능 테스트 결과 (오른쪽은 참조용 WD 블랙 SN750 1TB의 결과) / 최용석 기자
이 제품의 진가는 외형보다 ‘성능’에 있다. 기자가 구매한 P31 1TB 모델은 SSD의 가장 기초적인 성능을 확인하는 데 많이 쓰는 테스트용 프로그램 크리스털 디스크마크의 측정 결과에서 순차 읽기 속도가 3545.80MB/s, 순차 쓰기 속도는 3417.85MB/s로 나타났다. 매우 준수한 결과다. 이는 업계에서 성능으로 유명한 타사의 고급형·고성능 SSD 제품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크리스털 디스크마크의 P31 ‘실제성능’ 테스트 결과. 랜덤 4K 성능이 잘나오는 편이다. / 최용석 기자
순차 읽기/쓰기뿐 아니라 실제 체감 성능에 영향을 끼치는 랜덤 4K 읽기/쓰기 성능도 최상급 성능을 뽐낸다. 특히 랜덤 성능에서 쓰기 성능이 전반적으로 읽기 성능보다 훨씬 우수하게 나온 것이 인상 깊다. SK하이닉스에서 자체 개발한 컨트롤러가 최적화가 매우 잘 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본 성능이 좋은 만큼 일반적인 사용 환경의 파일 복사도 발군의 성능을 발휘한다. 용량이 큰 단일 파일 중심인 8GB 용량의 영화 한 편을 복사하는데 약 6초가 소요된다. 다수의 파일과 폴더로 구성된 약 29GB 용량의 게임 설치 폴더는 복사하는데 약 15초 정도다. 윈도 자체 복사 창에서의 속도는 최대 초당 1GB 이상의 복사 속도가 나왔다.

약 29GB 용량의 게임 폴더를 P31로 복사하는 모습 / 최용석 기자
이는 기자의 테스트용 시스템에서 원본 파일이 저장된 SSD가 성능이 떨어지는 보급형 제품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해당 제품의 읽기 성능이 복사 대상인 P31의 쓰기 성능보다 낮다 보니, 제대로된 복사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 사용 환경에 따라 이보다 복사 시간이 더욱 짧을 수 있다. 크리스털 디스크마크에서 나온 순차 쓰기 성능이라면 이론상 8GB 영화 한 편은 약 3초면 복사가 끝난다.

최근 유튜브 방송 인구가 증가하고, 대용량·고화질 영상 작업 수요도 늘면서 SSD의 ‘실제 쓰기 성능’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주류인 TLC(Triple Level Cell) 낸드 기반 SSD는 대용량 데이터의 복사나 녹화 등으로 장시간 데이터 쓰기가 계속되면 쓰기 속도 향상을 위한 캐시 메모리가 가득 차면서 쓰기 속도가 저하되고, 그로 인해 작업에도 지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1 역시 TLC 방식으로 예외는 아니다.

나래온 더티 테스트를 통한 지속 쓰기 성능 테스트 결과 / 최용석 기자
지속 쓰기 성능 테스트에 사용하는 나래온 더티 테스트 실행 결과, 초기 약 100GB까지는 2600MB/s 안팎의 쓰기 속도를 유지한다. 캐시 메모리 효과가 떨어지는 100GB 이후부터 1500MB/s 전후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등 TLC 기반 SSD 중에서도 괜찮은 성능을 보였다. 평균 속도 50% 미만 구간의 비율도 1.1%에 불과하고, 1TB를 모두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도 10분55초로 성능이 심각하게 저하되는 상황 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려했던 온도의 경우, 별도의 방열판 없이 장착한 상태에서 대기 중에는 약 44도, 최대 부하(더티 테스트) 중에는 순간적으로 68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 하드웨어 정보 확인 프로그램에서 확인한 제품 내부 설정에서 과열 경고가 뜨는 온도가 최대 83도인 것을 고려하면 방열판이 없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방열판이나 서멀 패드(노트북) 부착 같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더욱 안정적인 온도와 성능 유지가 가능해 보인다.

방열판 없이 온도는 최대 68도까지 올라갔지만 허용 범위 이내다. / 최용석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 제품을 테스트한 아난드텍에 따르면, P31은 소비전력 부분에서도 경쟁제품 대비 매우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를 읽고 쓰는 과정에서 용량 당 소비전력 효율이 다른 제품의 최소 1.3배에서 최대 약 2배에 달한다. 즉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 평균 전력 소비량이 3분의 2에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는 배터리 의존도가 높은 노트북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P31의 미국 아마존 출시 가격은 1TB 모델 기준 정가 134.99달러(15만6600원)다. 성능이 비슷한 WD 블랙 SN750의 1TB 제품이 정가 234달러(방열판 없음, 27만1400원), 삼성전자의 970 EVO 플러스 1TB 제품이 정가 249.99달러(29만원)인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심지어 22일 현재 아마존에서 WD와 삼성 제품이 20%에서 40%까지 할인 판매 중임에도 그보다 싸다. ‘가격 대비 성능’ 또한 경쟁 제품 대비 매우 뛰어난 셈이다.

현재 P31은 미국 아마존에서만 판매 중이다. / 최용석 기자
이렇게 잘 나온 제품이고,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인데 왜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을까.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첫 소비자용 SSD 제품이라 유통 채널 선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일단 시장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유통망을 갖춘 미국 아마존에서 먼저 출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이어 "한국 정식 출시 계획은 미정이다"라고 덧붙였다.

P31은 현재 한국으로 직배송을 지원하지 않는다. 구매 대행 및 배송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국내 유통망과 AS센터도 아직 갖춰지지 않아 본사와 공장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AS를 받을 수 없다. 문제 발생 시 미국 현지 센터로 직접 RMA를 보내야 한다. 5년 AS를 지원한다지만 국내 AS 불가는 뼈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 골드 P31은 성능과 가격, 소비전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기존 고성능 SSD 시장을 뒤흔들만한 제품이다. 직구를 해서라도 구매할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노트북용 저전력·고성능 SSD를 찾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하루빨리 국내에도 유통망 확충 및 정식 발매를 기대해 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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