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재택’이 전가의보도가 아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0.10.02 12:13
K-방역의 핵심은 모임과 이동을 금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확진자를 부지런히 찾고 동선을 파악해 감염 전파를 차단하고 있다. 정부는 ‘재택’을 가장 확실한 격리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재택’ 이란 집에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냥 머무는 게 아니라 일을 해야 하고 온라인교육이 가능한지 점검돼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편화 되었다고 해서 우리도 그냥 받아 들일 일이 아니다.

당사자의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정부나 기업이 일방적으로 재택근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독립적인 업무공간을 갖출 수 있는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짚어야 한다. 집에 머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홈오피스(Home Office)’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은 자유롭게 쓰더라도 공간이 가족으로 부터 어느 정도 독립이 가능해야 한다. 여러 명의 가족이 한 공간에 뒹구는 가정이 태반인 우리의 현실에서 재택근무 하라는 것은 방기(放棄)에 가깝다.

20여년 재택근무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는 유럽의 한 기업은 개인의 공간을 회사가 업무공간으로 빌렸다고 여기고 있다. 각자의 집에 있는 공간이지만 표준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보안이 유지되는 ‘가상사설망(Virtual Private Network)’과 같은 통신, 업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구비된 IT 기기, 심지어 규격화된 책상까지 제공된다.

통신비를 비롯한 일정 비용이 제공되며, 인쇄용지를 포함한 사무용품은 주문하면 배달해 준다. 무조건 집에서 일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사무실을 제공해 주지 않는 대신에 흩어져 있는 각자의 홈오피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주택에 널찍한 공간을 사무실로 마련할 수 있는 서구의 국가들과 우리는 다르다. 구성원들의 주거 환경 조사를 통해서라도 우리만의 근무환경을 찾아야 한다. 주거지에 일정한 조건에 맞는 오피스를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 ‘위성사무소(Satellite Office)’를 만들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여러 기관 또는 회사가 공동으로 이런 사무소를 마련할 수도 있다. 아파트단지, 지하철역사 등 곳곳에 재택 대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몇 개 대기업은 공동으로 ‘도쿄의 순환선(야마노테 선)’ 주요 역에 공유오피스를 만든 바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온라인으로 교육이 가능한 가정이 얼마나 되는지 기본적인 조사도 안 된 상태에서 학교 문을 다 닫기만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방 한 칸에 여러 명이 주거하는 열악한 가정이 수백만이나 된다. 또 부모의 보살핌은 어떤지, 통신·기기·소프트웨어 등 환경은 어떤지, 온라인 수강 능력은 어떤지 살펴야 할 것 아닌가.

또 교육은 단순히 온라인으로 지식만 전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실기, 실습은 물론 체육 등의 신체 발달, 사회 관계 속에서 발달되는 인성 등은 온라인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천차만별의 환경 속에서 온라인교육 만 앞세우는 교육당국을 보면 답답하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규모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소규모 그룹과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사 교육으로서는 생존을 위한 방안이지만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공교육과 대비되어 결과적으로는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

환경도 구비 안 된 온라인 만 외칠 일이 아니다. 현실도 못 보면서 비대면 교육을 위한 통신비를 지원하겠다니 한심하다. 인천 형제 화재 사건에서 보듯이 통신비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보살피지 않아 생긴 사고이지만 무조건 학교를 닫고 보는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학교를 닫으면 부모의 손이 미치지 못해 방황하며 몰려 다닐 청소년들이 얼마가 될지 알 수도 없다.

학원처럼 ‘소규모 교실(Micro class)’로 전환하고 등하교를 포함해 철저한 방역 조치를 해서 학교 중심의 교육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학교를 안전한 장소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빠르고 옳은 길이다. 업무나 교육이나 재택이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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