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국내 가상화폐 채굴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다. 지난 23일을 전후로 가상화폐 시장의 대표 주자중 하나였던 '이더리움'의 시세가 300달러대에서 순식간에 10센트까지 급락해버린 '플래시크래시(flash crash, 순간 폭락)'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해졌기 때문이다.

비록 이더리움 시세는 사태 당일 폭락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3일이 지난 27일 기준으로 100달러가량 떨어진 200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비트코인 역시 덩달아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시세가 300달러가량 하락했다.

최근 가상화폐 채굴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그래픽카드 제품들이 중고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채굴용 그래픽카드로 인기가 높았던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1060 제품. / 엔비디아 제공
최근 가상화폐 채굴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그래픽카드 제품들이 중고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채굴용 그래픽카드로 인기가 높았던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1060 제품. / 엔비디아 제공
가상화폐 채굴 사업에 뛰어든 '업자'들 중에서도 손을 털고 철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채굴 사업의 핵심 장비(?)로 떠오른 채굴 연산용 그래픽카드가 중고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중고 제품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인 중고나라의 경우 이전까지 매물을 찾기 힘들었던 지포스 GTX 1060 그래픽카드 제품들이 23일 이후로 시장에 상당량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해당 매물들은 최대한 개인 사용자가 쓰던 제품인 것처럼 상품 설명을 해놓았지만, 막상 제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정보나 구매 증빙 정보(영수증 등)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자가 표시해둔 구매 일자도 가상화폐 시장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2017년 2월~3월로 비슷하다. 어떤 업자는 아예 대놓고 채굴용 시스템 자체를 중고 매물로 등록하기도 했다.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중고 그래픽카드가 시장에 풀리면서 중고나라와 국내 주요 하드웨어 커뮤니티에서는 중고 그래픽카드 불매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들을 위해 안내 게시물(?)을 등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는 채굴용 중고 그래픽카드가 단순히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넘어 좋지 않은 제품 상태로 인해 2차, 3차 피해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폭락 사태가 발생한 23일 이후 중고 시장에 그래픽카드 매물이 급증했다. 중고나라 그래픽카드 게시판에 등록된 1060 그래픽카드 매물 제품들의 모습. / 중고나라 게시판 갈무리
이더리움 폭락 사태가 발생한 23일 이후 중고 시장에 그래픽카드 매물이 급증했다. 중고나라 그래픽카드 게시판에 등록된 1060 그래픽카드 매물 제품들의 모습. / 중고나라 게시판 갈무리
채굴용 시스템에 사용된 그래픽카드는 24시간 쉬지 않고 최대 성능으로 채굴 연산에만 사용된다. 그래픽카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무리 고성능, 고급형 그래픽카드라 하더라도 가정용, 개인 소비자용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대부분 하루 최대 8시간 사용을 기준으로 설계 및 제조된다. 사용 빈도가 높은 PC방에 납품하는 PC 부품은 일반 판매용 제품보다 보증기간을 적게는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만 적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24시간 최대 성능으로 쉬지 않고 가동하면 그만큼 고장이나 불량이 발생할 확률은 높아지고 수명도 줄어든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냉큼 구매했다가는 금방 먹통이 되어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AS 처리와 관련해 소비자와 그래픽카드 제조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서 그 피해는 2차, 3차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 2014년 비트코인 채굴용으로 사용됐던 그래픽카드가 시세 하락으로 중고시장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사실로 증명된 바 있다.

중고 매물의 가격 또한 문제다. 현재 업자들이 매물로 내놓는 중고 제품의 경우 지포스 GTX 1060 3GB 제품을 기준으로 정상가(2017년 초 기준 20만원 중후반대)보다 최소 5만원에서 10만원 이상 더 비싼 30만원~40만원대에 올려놓는 경우가 상당수다.

뒤늦게 채굴 사업에 뛰어들면서 정상가 대비 비싼 가격으로 그래픽카드를 구한 업자들이 적지 않다 보니, 원금 회수를 위해 매물 가격도 시세보다 비싸게 올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한 그래픽카드 유통수입사 관계자는 "채굴용으로 사용되던 제품의 중고시장 유입은 이미 예견된 사태다. 시세보다 싸다고 해서 채굴용으로 사용된 중고 그래픽카드는 가급적 구매하지 않는 것이 2차, 3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며 "중고 제품을 구매한다면 믿을 수 있는 지인이 개인용으로 사용하던 제품이나, 수기 영수증보다는 카드 영수증 또는 쇼핑몰 구매 정보가 남아있어 개인용으로 구매 및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