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알고 블록체인을 이야기하게 됐다. 2013년 말, 미국 의회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청문회를 할 때만 해도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다들 찾아보며 궁금해 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배경과 역사가 존재하고, 그로부터 의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맥락과 배경을 모르는 사회현상으로부터 영향과 의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을 비롯,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자화폐'라는 사회현상의 배경과 역사를 이해해야 현재 비트코인 열풍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컴퓨터 과학자 할 피네이(Hal Finney)가 해시(하나의 문자열을 이를 상징하는 더 짧은 길이의 값으로 변환하는 작업)를 이용, '재사용 가능한 작업 증명(RPOW, Reusable Proofs of Work)라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이후 이를 이용해 전자자산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비트코인 이전에도 존재했다.

암호학 전문가 웨이따이(Wei Dai)가 1998년, 전자분산원장 시스템에 기반한 비-머니(B-money)라는 전자자산을 제안한 것이 필자가 아는 한 첫 가상화폐 제작 시도였다. 비트코인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 나카모토 사토시 또한 2008년에 비트코인을 설명한 논문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웨이따이의 비-메모리(B-money)를 언급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 소속으로 알려진 인물 닉 재보(Nick Szabo)는 1998년 '비트골드(Bit gold)'라는 분산된 전자화폐를 고안했다. 비트골드는 실제로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비트코인의 직접적인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2008년 11월 필명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이 동등계층 통신(peer-to-peer) 네트워크를 이용해 청산인 없는 결제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했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 된 비트코인 시스템이 2009년 1월 활성화 되고, 나카모토 사토시가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이라고 불리우는 첫 블록을 채굴하고 50 비트코인을 보상받았다.

앞서 등장한 인물, 할 피네이는 활성화 첫날 비트코인 시스템을 인스톨하고 사토시로부터 10 비트코인을 전송 받았는데 이 거래가 비트코인의 첫 거래였다. 비트코인 초창기의 재미있는 거래들이 시험성으로 일어났는데, 파파존스로부터 피자 두 판을 시키고 1만 비트코인을 지불하기도 했다.

2010년 8월 15일 비트코인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이용해 1840억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일이 생겨났고 이 비트코인들은 두 개의 계좌에 나뉘어 전송됐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거래 기록에서 이 거래들이 지워졌고 버그가 수정된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업데이트 됐다. 이것이 비트코인 시스템의 유일한 (알려진) 오류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오류가 알려지지 않았다.

2011년을 지나면서 위키릭스(Wikileaks)를 포함한 몇몇 재단들이 비트코인을 기부의 방식으로 받기 시작했다. 2012년 1월에는 CBS 의 드라마 '더 굿 와이프(The Good Wife, 우리나라에서 '굿 와이프'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드라마의 원작)'에서 비트코인 재판을 다뤘다. 2012년 9월에는 비트코인 재단이 발족했고 2012년 10월에는 비트페이(BitPay)에서 1000개가 넘는 가게에서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인다고 보고했다. 2012년 11월에는 개인출판 플랫폼 워드프레스(WordPress)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하게 됐다.

2013년 3월에는 비트코인의 거래를 기록하는 블록체인이 여섯 시간 동안 거래를 인정하는 방식이 다른 두 개의 독립적인 체인으로 나누어져 비트코인 거래를 동시에 처리했다. 이에 개발자들은 비트코인 거래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켰고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0.7 버전으로 다운그레이드 시켜 문제를 해결했지만, 시스템 불안정에 따라 비트코인의 매각이 급속히 증가했고 비트코인 가격은 23%가 떨어진 37달러가 됐다. 이후 한시간 가량이 지나고 시스템 불안정이 일어나기 전인 가격인 48달러를 신속히 회복했다.

2013년 10월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가상화폐·무기 암시장 '실크로드'의 소유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Ross William Ulbricht)를 검거하면서 웹사이트에서 2만6000개의 비트코인을 압수했다. 2013년 10월 29일에는 로보코인(Robocoin)과 비타코닉스(Bitcoiniacs)라는 회사에서 첫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를 밴쿠버에 설치했다. 2013년 11월에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키프러스 소재 니코시아 대학교(University of Nicosia)가 비트코인을 '내일의 금'으로 지칭하며 등록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 2월에는 당시 세계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틴 곳스(Mt. Gox)가 74만4000개의 비트코인을 분실하고 파산했다. 비트코인 거래소 해킹/파산으로는 아직까지 가장 큰 규모의 사건이고 실제로 비트코인의 기록이 안전하다고 해 소유자들의 지갑(계정)과 거래소까지 안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사건이었다.

2015년 1월에는 코인베이스(Coinbase)라는 비트코인 거래소가 7500만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같은 달 영국의 비트코인 거래소 비츠스탬프(Bitstamp)는 1만9000개의 비트코인을 해킹 때문에 분실했다고 발표했다. 2015년 3월에는 매튜 포커(Matthew Pauker)가 설립한 비트코인 스타트업 21 INC가 유안 캐피털, 퀄컴 등 투자자들로부터 1억16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비트코인 관련된 모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중 가장 큰 규모였다.

2016년 8월에는 비트코인 거래소인 비트피넥스(Bitfinex)가 해킹으로 12만개의 비트코인을 분실했다. 2017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비트코인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비트코인의 역사를 보면 비트코인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며,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과는 달리 완전히 안전한 구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아직까지 일어났던 수많은 비트코인 거래소 해킹 사건들을 보면서 비트코인 거래소와 개인 계정들은 해킹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

본 칼럼은 위키피디아(Wikipedia), 프런티어전자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 BBC, CNN의 문서들을 참고해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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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 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