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개인용 컴퓨터가 70~80년대에 도입되면서 개인용단말, 뱅킹단말, POS 단말, 티켓프린터 뿐 아니라 ATM 같은 자동화기기가 빠르게 발전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는 한글을 입력하고 화면이나 프린터에 출력하는 것이 복병 중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지금 같이 모아 쓰는 방식이 아니었다. 메모리의 특정위치에 자모음을 저장해 불러 쓰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한글 한 글자를 위해 세 줄로 표시하거나 자모를 영문자처럼 가로쓰기를 하기도 했다.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것도 외국산의 특정기기는 우리가 마음대로 바꾸지도 못했다. 한글 꼴을 그림처럼 심는 작업을 하곤 했다. 외국회사에 가서 한글 심기 작업을 마치고 귀국하던 동료를 1983년 러시아에 의한 KAL기 피격사건으로 잃기도 했다.

타자기를 도입했을 때 이미 한글의 기계화가 이슈였던 것으로 보인다. 단방향으로 자모를 나열하는 영문 타자기와는 달리 초성, 중성, 종성이 있는 한글 타자기의 기계구조부터 바꿔야 했다. 안과 의사인 공병우 박사는 1949년에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고 손가락에 부담이 덜한 세벌식 타자기를 고안해 선풍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정부는 1968년에 자음 한벌, 모음 두벌, 받침 한벌로 된 네벌식 글자판을 표준으로 했다가 1983년에 두벌식으로 표준을 바꿔 지금까지 사용한다. 우리가 쓰는 키보드가 두벌식 표준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병우는 세벌식이 더 과학적이라는 집념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포함해 소형 모바일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한글 입력이 다시 이슈로 등장한다. 손끝으로 빠르게 손쉽게 입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빠르게 한 손으로 입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엄지족’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바일 기기의 입력은 타자기나 키보드처럼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고 제조업체마다 다른 방식을 채택해 쓴다.

공병우는 한글 타자의 보급에 평생을 바쳤다. 병원을 찾은 한글학자 이극로의 열정에 자극을 받아 본인도 한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과학적, 합리적, 실용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집념을 가지고 타자기를 분해해 우리 한글에 가장 적합한 타자기를 만들었다. 한글과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안과 의사가 타자기에 매달린 것은 국가의 효율과 지식 확산의 중요한 수단임을 일찍이 간파하였음이리라.

일제 강점기에 한글학자들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한글을 지켜왔다. 지금도 국립국어원이 국어의 최고 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 아쉬운 것은 타자기, 컴퓨터, 모바일기기 등장의 고비마다 보듯이 한글 학자들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다. 한글을 아름답게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확산 수단으로서 효율성을 뒷받침 하는데 조금 더 역할을 했어야 했다.

한글날만 되면 한자와 혼용을 금지하고 외국어,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진다. 가능하다면 한글을 써야한다는 것에 이론이 없지만 쏟아지는 새말들을 외국어라고 모두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보통신, 의학, 과학기술 분야 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말들도 계속 생겨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새말모임도 더 적극적으로 빠르게 새말을 정해야 한다.

더욱 선제적으로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보듬어 한글의 기계화, 정보화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한글도 국어학자만으로 지키는 시대는 지났다. 훨씬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일해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공병우박사가 타계한 지 지난 3월로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한글을 지키기 위한 기계화와 정보화에 과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 되돌아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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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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