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간 전투를 다룬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를 즐긴 이용자는 ‘간접살상’을 경험해 종교적 신념을 위반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는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송혜영, 조중래, 김재영 부장판사)는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23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받게 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 이미지 / 라이엇게임즈
검찰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A씨가 전투를 통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온라인 대전 게임 LoL을 즐겼다며 A씨가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인 ‘집총거부’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LoL은 캐릭터 형상, 전투 표현 방법에 비춰볼 때 피고인에게 타인에 대한 살상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이번 판결은 현명한 판단의 결과"라며 "판사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직접 하지는 않더라도 판결 전 해당 게임을 조사해본 결과 게임의 전략성 등에 초점을 맞췄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 무죄 판례 이후 검찰 측은 판단 지침 마련
"게임은 엄격한 판단 기준 중 하나, 업계 부정적 영향 없을 것"

여호와의 증인은 교리의 특성 상 국가 및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배격하고, 사람간에 벌이는 모든 전쟁 및 관련 행위를 거부한다. 이들이 병역의무를 거부하고 신병 훈련때 무기를 들지 않는 ‘집총거부’ 등의 행위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법원이 2018년 11월 종교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보고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하급심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비롯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검찰은 대법원 판례 이후 이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판단 지침 10가지를 마련했다. 지침에는 당사자가 믿는 종교에서 병역거부를 확실하게 명기하는지 여부, 거부 당사자가 해당 종교를 믿게 된 경위, 당사자가 얼마나 교리를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여부 등 다양한 사항이 포함됐다. 당사자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항목에서 일인칭 슈팅(FPS)게임에 접속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는 내용도 있다.

검찰은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오버워치’ 등 총기를 다루는 대표적 게임 9종을 주로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심적 병역 거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하고 ‘집총거부’를 하는 만큼, 총기를 주로 다루는 게임을 자주 즐길수록 종교적 신념의 진실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일각에서는 검찰이 게임의 폭력적인 부분을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박하는 근거로 무리하게 연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위 학회장은 이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FPS 장르 게임은 살상이나 폭력이라는 요소가 아닌, 생존과 순수한 경쟁 등의 요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라며 "검찰의 논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매우 엄격한 교리에 따라 총을 잡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데, 정작 총기를 다루는 게임을 자주 즐긴다면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이 병역거부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척도로 쓰인다고 해서 게임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매우 소수인 탓에 이들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엄격한 기준 중 하나로 게임이 쓰인 것"이라며 "병역 거부자가 단순히 군대에 가기 싫어 입대 전 종교 활동을 단기간 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교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인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병역거부자가 FPS 게임에 접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이 난 사례도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2부(홍창우 부장판사)는 2019년 6월, 본인 명의 계정으로 서든어택 등 FPS 게임에 2회 접속해 총 40분쯤 플레이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B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직접 게임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접속 횟수, 시간을 살폈을 때 종교적 신념·양심이 진실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