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에는 TV 보급은 물론 극장도 제대로 없었다. 밤만 되면 순회하면서 학교 운동장에 막을 치고 영사기를 돌렸다. 필름이 끊겨 상영이 멈추고는 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두만강아 잘 있거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며 애국심을 키우기도 하고 눈물 바다가 되기도 했다. 순회 야외 극장은 문화 격차를 줄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0년전 남미 에콰도르 정보통신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동등한 인터넷 접속(equal access)을 헌법적 권리로 상정했다. 이를 뒷받침 할 프로그램으로 아마존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버스를 구경했다. 버스 위에는 커다란 인공위성 수신 안테나를 부착하고 내부에는 긴 책상 위에 PC 10대 정도를 설치했다. 교사 한 명이 이 버스를 직접 운전하고 아마존 밀림 지역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친구 조영신은 강원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과학교사를 양성하는 교수로서 은퇴를 하였다. 강원도 산골 아이들에게 물리실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이 우물실(우리가 해보는 물리 실험)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10여년 간 주말마다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 콜로라도를 방문했다가 그곳 교수들의 활동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를 본뜬 활동이 바로 우물실이란다. 실험 기자재를 자비를 털고 주위에서 주워 모아 손수 제작했다. 허름하지만 아이들에게 물리의 경험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내 친구가 훌륭한 과학자인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선생님이었던 건 틀림없다.
강원, 충북 등의 10여개 군 60여개 오지의 초등학교가 17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율적으로 비대면 영어 학습을 실시한다. 스마트패드(태블릿PC)에 영어 학습 컨텐츠를 담아 교육한다.
코로나19가 인류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꿀 것 같다. 모든 활동이 소셜(SNS), 온라인, 사이버, 영상에서 비대면으로 이뤄질 것이다. 이런 대전환이 일어나면 여러 형태의 격차가 심화될 터다. 문화, 정보, 교육, 경제력 격차는 물론이고 상당 기간 일상생활 부적응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이 격차는 연령, 지역, 직업, 교육수준, 부모여건 등 여러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교육부총리는 교육격차를 해소할 학교운영 방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 만의 과제도 아닐 뿐만 아니라 적당히 할 일도 아니다. 교육만 해도 사교육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질 텐데 특목고나 자사고 같이, 지역마다 설립된 공적 영역의 우수 교육 기관을 없애고 있지 않은가.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지 없애는 게 대수가 아니다. 미래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사교육과 뉴미디어를 통한 교육은 기존 교육체제에 익숙한 성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BBC 같은 데서 만든 교육 컨텐츠가 유튜브 같은 공간을 통해 자유롭게 배포된다. 유아 단계부터 모든 영역에서 공교육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제 교육은 여러 여건의 차이와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 도입으로 사교육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개별 교육 시대로 전환할 것이다. 아직도 교육부는 획일적으로 뭘 어떻게 해 보겠다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자율에 맡기면서도 아마존의 아이들을 챙기듯 소외계층 교육에 더욱 매달려야 한다.
10년 전 스마트폰을 처음 도입했을 때 KT는 노인들을 찾아가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봉사단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 보다 10년 앞선 2000년대 초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자 여러 기관이 무상 인터넷 교육을 제공했다.
노년들에게 또 다시 위기가 다가 왔다. 코로나19 감염 걱정뿐만 아니라 일상의 영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매장에 가도 자동화 기기로 주문해야 하고, 무인 점포에서 스스로 결제해야 한다. 앞으로 AI와 대화를 해야 하며, 온라인으로 쇼핑을 해야 한다. 어렵기만 하다.
예상되는 차별과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개별화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적응에 곤란을 겪을 도서산간, 노인 등 사회 소외계층에 제도권 서비스에만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운동장 영화 상영, 강원도의 주말 물리실험, 스마트폰 봉사단처럼 대상을 찾아가야 한다.
‘학습지교사’ 같은 방식의 공공 방문 서비스직을 만들어 소셜(SNS), 온라인, 사이버, 영상에서의 일상생활을 도와줘야 한다. ‘디지털 뉴딜’로 구축할 인프라 투자는 소외 지역에 집중하고 차라리 플랫폼과 컨텐츠 개발과 서비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외국 컨텐츠로 교육을 받고, 외국 플랫폼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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