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20대 이상 성인은 커피를 얼마나 마실까. 2018년 한해 소비한 커피량을 잔으로 환산했더니 세계는 132잔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353잔이었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9년에 낸 ‘커피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이렇다. 2015년도 소비량과 비교하더라도 21%나 증가했다. 세계 커피 소비량은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순으로 많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 커피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커피믹스’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대중화되었다. 한 때 커피믹스는 성인의 95%가 마실 정도로 커피를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1999년 스타벅스 국내 진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여러 커피전문점이 커피머신을 이용하여 추출한 에스프레소 기반의 음료를 제공하면서 한국인 커피 취향은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원두로 고급 질의 커피를 제공하는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는 브랜드와 보급 매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 바, 블루보틀, 커피앳웍스, 엔제리너스 스페셜티, 이디야 커피랩 등이 대표적이다.
커피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추출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 맛과 풍미가 확 달라진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추출 방식이 다르므로 선호하는 커피도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가 대세다. 오죽하면 살을 에는 추위에도 에스프레소로 만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를 즐긴다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2018년 1월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스타벅스코리아는 2017년도 한해 아메리카노만 8360만 잔을 팔았다. 한국 인구 5177만 명(2017년 7월)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1.6잔, 성인 기준으로 2잔 가량 마신 셈이다. 아메리카노 한 메뉴만으로 약 3427억원을 벌어들였다. 2019년 2월 같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스타벅스에서 2019년 1월 아이스아메리카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다른 커피전문점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디야커피는 겨울이 시작된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3개월간 아이스아메리카노 판매량이 2017년 동기보다 158만잔이 더 팔렸다. 37%나 성장했다. 투썸플레이스 아이스 음료 판매량은 2017년 동기 대비 2018년에서 2019년 초까지 걸쳐진 기간동안 2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아’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의 커피취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커피시장이 증가하면서 커피 상품도 다양화되고 고급 퀄리티의 커피를 제공하는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는 브랜드와 그 매장 수도 늘어난다. 특히 스타벅스 리저브 바는 중국 다음으로 50개가 넘는 매장을 개설했다. 인구 천만 명 당 9.8개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수의 매장을 오픈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커피믹스 소비량은 줄어들었다. 그 대신 커피원두를 즐기는 소비층이 늘어났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소비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노는 커피머신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희석해 만드는 음료이다. ‘미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라고 해서 아메리카노라고 불리게 됐지만, 정작 오늘날 미국에선 아메리카노보다 스페셜티 커피를 추출하여 만든 브루(brew) 커피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것이다.
배치브루 커피는 한 번에 여러 잔 분량의 원액 또는 음료를 미리 추출해 놓은 ‘브루잉 커피’를 말한다. 많은 양의 커피를 미리 뽑아놓은 뒤 손님이 주문하면 이 뽑아 둔 커피를 바로 컵에 담아 주는 방식이다.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오늘의 커피’가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배치 브루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황원제 바리스타는 "미국에선 배치(batch) 브루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고 있고, 그 다음으로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한 우유가 들어간 라떼, 모카, 카푸치노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황 바리스타는 미국 뉴욕에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을 운영한다. ‘커피 페스트(Coffee fest) 뉴욕 2019’에서 열린 ‘아메리칸 베스트 콜드브루 대회’(America’s Best Cold Brew Competition)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0 여 년 전에 뉴욕 맨하탄의 유명한 커피 전문점인 스텀타운(Stump Town)을 방문한 적이 있다. 커피를 주문하자 이미 추출해둔 커피 원액(냉장고에 보관한 상태)으로 음료를 만들어 줘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배치브루 커피였다.
미국 대다수의 전문커피점은 ‘오늘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공간 외에 핸드드립이나 다른 기구들을 사용하여 추출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한다. 워싱턴 주의 포틀랜드(Portland)에 있는 커피 전문점 브리스타(BRISTA)는 사이폰 추출기구를 이용해 음료를 만들어 판다. 훠배럴커피(Four Barrel Coffee)는 핸드드립을 이용하여 음료를 추출하여 판매한다.
샌프란시스코 커피 전문점 마블러스(Ma.velous)는 케멕스, 콜드브루, 사이폰, 프렌치프레스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추출한 음료를 판매하는 브루 바(Brew Bar) 메뉴와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그 중 카페 앨리(Ally)에서 레귤러커피를 주문했었다. 120ml 한 잔을 커피머신으로 룽고(35ml 이상 추출된 추출원액)로 오랜시간 동안 한 번에 추출해 줬다. 당연히 30ml 정도의 에스프레소에 물을 희석한 아메리카노를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이 후 국내에 ‘폴 바셋’ 커피 전문점이 들어왔다. 그 때 호주에서 본 룽고 추출 개념의 음료를 선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피원두 자체의 맛을 즐기려는 소비자가 는다. 덩달아 스페셜티 커피와 같은 고급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수요도 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치브루 형식으로 음료를 미리 만들어 놓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부어 제공하는 전문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바로 눈 앞에서 직접 커피를 추출하여 제공하는 것을 선호한다. 배치브루 방식 커피에 내심 거부감을 가진 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바로 앞에서 만든 음료가 가장 맛있겠지만 미리 만든 커피원액도 냉장고에 보관하여 소분하여 먹어도 맛의 변화에 별 차이가 없다. 이 방법은 시간적, 공간적인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스페셜티커피를 즐기는 고객이라면 커피전문점 전문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추출해 둔 커피원액을 사다가 집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소량씩 나누어 마신다면 큰 노력 없이 맛있는 커피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혜경 칼럼리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에서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 <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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