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에 근무하게 되면서 세미나, 포럼, 기자회견, 강연 등의 외부 행사에서 말할 기회가 많아졌다.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내가 말해야 할 내용을 아랫사람들이 준비해 내미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할지 어떻게 알아서 만들었냐고 물리고 나서는 그런 관행을 없앴다.
말(스피치)한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투영하는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말을 전달하는 방식과 순발력에 의해서 큰 차이가 난다. 제1야당이 30대 청년을 대표로 선출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정치 역사에도 기록될 만 한 큰 사건이다.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일련의 과정을 관찰한 바로는 말하고 토론하는 방식에서 구닥다리와 신세대를 구분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켜 보면서 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말(스피치)을 잘할까 생각이 들었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자기가 발표할 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나름대로 자료를 찾고 스토리라인을 꾸미는 일을 반복적으로 교육받은 결과이다.
젊은 세대는 미리 종이에 써 온 걸 보고 말하는 것으로는 진정성과 공감을 갖지 못한다. 평소에 국가에 대한 생각, 각종 현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 미래를 위한 구상 등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 일사천리로 뿜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불공정을 일삼으면서 써있는 대로 공정을 읽거나, 주택·벤처·원전을 말하면서 주워들은 대로 읊는 냄새를 풍기면 국민들은 다 안다. 그들에게 식상하는 것이다. 이준석은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에 당선소감을 노래 가사를 인용해 직접 썼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써준 대로, 각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말하면서도 연설을 잘하는 대통령을 갖고 싶다. 이 시대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일상을 스스로 챙기고,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할 말은 하는 사람을 원한다.
청년 당대표가 불안하다고 하나 여야 가릴 것 없이 당정청을 장악하고 있는 경륜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일이나 의사 결정하는 걸 보면 이 보다 나쁠 수 없지 싶다.
지도자들은 (예를 들어) 엑셀 정도는 해야 하고 시험을 보겠다고 하니 능력우선주의에 트럼피즘이라며 공격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적어도 사회 구성원으로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 만 본 꼴이다. 그러니 젊은이들한테 배척당한다. 선발 방법은 이슈가 될 수 있으나 내 글을 보고 보낸 고위직 지방공무원의 하소연을 보면 이준석대표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의원(지방의원포함) 공천심사에 법안 발의 건수가 포함되어 있으니 서로 발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법이에요. 어느 시군, 시도에서 발의했다면 시군 명칭만 바꿔 통으로 베껴 발의하지요. 자신들이 발의하고도 질문하면 대답도 못해서 집행부가 답해주는 우스운 상황도 생겨요. 기본도 안된 사람이 많아요. 서류(특히 회계)도 잘 못 보고요. 질의, 응답도 행정공무원이 써줘요. 돌겠어요" 이준석은 이런 상황을 말한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 기본도 안 되는 사람을 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세대가 열심히 키워 온 내 딸 세대인 30대를 응원하고 희망을 걸어 보련다.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이들을 보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볼 만 하다. 30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잘못된 정치 행위와 정책들을 배격하고 자신들이 살아갈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기 바란다.
우선 그들이 나서 길 위의 돌부리를 걷어 내듯이 경륜 많다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나라의 곳간을 거덜내는 정책들을 바로 잡아 곳간을 다시 채워야 할 것이며, 기업이 마음껏 활동하게 하여야 할 것이며, 국가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며, 미래에 맞는 인재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국민이 갈라져 짜증스럽지 않고 행복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나이에 의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시대의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87년 체제여 이제 안녕!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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