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노블코믹스(웹소설 원작을 웹툰으로 제작·서비스하면서 카카오페이지가 명명한 웹소설 원작 미디어 믹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본 계약에 앞서 작가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을 카카오엔터에 부여하는 계약을 출판사에 요구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업계는 카카오엔터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창작자의 주요 권리를 침해하는 갑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정위의 눈을 피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카오엔터 화면 갈무리
카카오엔터 화면 갈무리
24일 IT조선 취재 결과에 따르면 카카오엔터는 출판사를 상대로 노블코믹스 제작 과정에서 본 계약에 앞서 사전에, 2차적 저작권 작성권을 카카오엔터에 부여하는 내용의 계약을 작가와 체결하도록 요구했다. 카카오엔터는 각 출판사에 ‘노블 코믹스 수익배분을 위해 소설 원작 계약을 진행할 때는 원작 소설의 전체 판권에 대한 작성권 부여 계약을 베이스로 하며, 만화/웹툰 저작물에 대한 부가 합의를 추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을 사전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카카오엔터가 명시한 2차적 저작물은 ‘번역저작물, 영상저작물(영화, 드라마, 웹드라마 등), 게임저작물, 캐릭터를 이용한 2차 상품, 채팅형 콘텐츠, 오디오 드라마, 오디오북’ 등이다. 웹소설로 창작될 수 있는 이같은 2차 수익사업에 관한 권리를 카카오엔터에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카카오엔터 측은 이와 관련 "웹툰화를 포함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이용허락’ 계약을 원작 CP사에 제안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작 CP사와 협의 하에 진행하고 있다"며 "원작 CP사가 이를 거부한다고 해서 다른 계약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이용허락 계약을 하더라도, 각 2차 저작물을 제작할 때 마다 원작사 및 원작 작가와 별도 확인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추가합의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의 않으면 노블코믹스 기회 없어…사전 조건 거절 어려운 현실

출판 관계자들은 해당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노블코믹스 계약 체결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카카오엔터 측은 다수 출판사에 일괄적으로 해당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며 "내용에 동의해야만 노블코믹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카카오엔터의 이같은 사전요구는 업계 사람들이면 모두 흔히 아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이런 내용 때문에 다수 출판사 대표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카카오, 네이버 중심의 웹소설 웹툰 플랫폼 생태계를 고려할 때 이같은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향후 연재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만 업계 최고로 꼽히는 작가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전 요구는 공정위 눈 피하기 위한 ‘꼼수’

카카오가 본 계약에 앞서 이 같은 사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공정위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로 분석된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2차적 저작물에 대한 사업자의 무단 사용 조항을 불공정 계약이라고 보고 시정조치했다. 웹툰 연재 계약 체결시 사업자가 ‘2차적 저작물 사용권'을 포함한 권리까지 설정해, 사실상 별도 합의해야 하는 작가의 2차적 사업권을 부당하게 위임받는 조항을 발견해 무효 조치한 것이다. 공정위는 당시 "콘텐츠의 2차적 저작물 사용 권리를 설정할 땐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카카오엔터가 본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이 이뤄지기 전에, 2차적 저작물 관련 교섭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려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업자가 2차적 저작물 사용권을 가져가면, 작가는 더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저작물을 거래할 기회를 뺏긴다. 다수 작가는 2차 저작권 관련한 실질적 협상권을 빼앗긴 셈이다.

여기에 카카오엔터가 출판사에 비밀유지준수 의무까지 부여할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카카오엔터에 부여한 뒤 그 부담과 책임은 중간사업체인 출판사가 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가에게 2차저작물 작성권을 카카오에 부여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려고 해도, 플랫폼과 체결한 비밀유지의무조항이 있으면 작가에게 이를 모두 설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작가 입장에서는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불공정한 계약 체결에 임해야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서유경 아티스 변호사는 "출판사 같은 중간사업체로서는 작가에게 ‘업계가 원래 그렇다'는 ‘관행이다'라는 말로 설명하며 설득하게 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며 "작가는 자신이 명확히 알수 없는 이유로, 자기 의사에 의해 계약을 자유롭게 결정할 자유도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법조계는 카카오엔터의 일방적 사전 요구를 일종의 ‘약관'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봤다. 불공정성을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임애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웹툰화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은 개별적 협상 가능성을 차단한 것으로 일종의 약관처럼 볼 수 있다"며 "이 경우 약관 규제법을 적용받아 불공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유경 아티스 변호사 역시 "카카오가 출판사와 개별 협상을 할 여지를 제공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다면 사실상 약관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우월적 지위 이용한 카카오식 갑질…콘텐츠 생태계 악화 우려

업계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카카오식 갑질이 잇따르면서 콘텐츠 생태계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방송계에서는 콘텐츠를 만든 회사는 정작 돈을 벌지 못하고 배급사만 배부른 상황이 발생했던 적이 있다.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카카오엔터의 행위는 콘텐츠 시장을 빈약하게 만드는 조치일 수 있다"며 "공정한 생태계 촉구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도 "플랫폼이 2차 저작권 작성권을 부여하는 식의 계약 조건을 사전에 제시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로운 교섭 여지를 상당히 제한하는 대표적 불공정 사례다"라며 "건전한 웹툰 웹소설 생태계를 위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카카오엔터가 공모전 과정에서 저작권 갑질 혐의를 포착하고 제재 절차에 돌입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소설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 작품들의 저작권을 일부 가져가는 조건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IT조선은 카카오페이지 공모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저작권 문제를 지적했었다. 당시 취재 결과에 따르면 카카오페이지는 공모전에서 일방적으로 2차 저작물 작성권은 카카오페이지에 있다고 명시했다. 변호사들은 수상작의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주최자가 가져간다는 내용이 ‘공모전 약관 시정 조치’ 위반과 ‘불공정 약관’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공모전은 주최 측과 응모자 사이의 민법상 계약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공고와 모집 요강 등이 계약 내 ‘약관’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