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2008년 통합계좌조회 서비스를 출시했을 당시부터 개인 금융계좌 정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는 개인의 건강이력 정보였는데 이는 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받을 수 없어 쉽지 않았다. 두 가지는 네이버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개인 금융계좌와 건강이력 정보가 있으면 자산 관리, 보험 설계, 예금 대출 펀드 보험 등 금융상품 추천 및 중개 판매, 사전 건강 관리 등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었다."

네이버 전직 고위 직원이 해준 말이다. 이 직원이 말한 숙원사업 두 가지는 2020년 8월 시행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가능해졌다. 네이버가 숙원사업인 개인 금융계좌와 건강이력 정보까지 확보하게 되면 네이버가 운영하는 부동산, 증권, 자동차, 쇼핑, 리뷰 등 각종 서비스를 활용해 여러가지 편리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네이버의 데이터 독점이나 빅브라더 논란도 커질 것이다. 네이버는 개인의 소득과 지출, 금융 자산과 부채, 보유 차량 등 재산 정보 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 이력과 현재 상태 등 정보까지 축적해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해외 빅테크 기업이 각각 검색, 소셜서비스(SNS), 쇼핑 등에 특화돼 있는 것과 달리, 네이버는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거의 전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정보를 모으고 있다. 네이버가 개인 금융계좌와 건강이력 정보까지 제대로 확보하게 되면 사업 영역과 정보 축적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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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데이터 주권' 보장하는 데이터 3법 시행...네이버 숙원사업 해결돼

데이터 3법은 공공기관, 금융사, 일반 기업 등에 흩어져 있는 개인 정보를 본래 주인인 '개인'이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이터 주권' 개념에서 추진됐다. 미국, 유럽,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관련 법을 시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 분야가 가장 앞서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1년 1월부터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으며, 9월까지 45개사가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받았다. 네이버페이를 운영하는 네이버파이낸셜은 1월 본허가를 취득했다.

마이데이터 사업에서 기관 및 서비스 간 정보 전송을 위한 표준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사용 의무화가 2022년 1월 시행될 예정이며, 표준 API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게 되면 금융 정보 이용이 훨씬 편리해져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네이버파이낸셜 뿐 아니라 토스나 뱅크샐러드는 현재도 타 금융사의 개인 계좌 정보를 모두 모아서 보여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스크린 스크래핑 방식으로 표준 API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데이터 분류 기준 등이 각 금융사마다 통일돼 있지 않고 보안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 고객 입장에서는 각 금융사마다 매번 공인인증서 등으로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

표준 API 방식은 현재 은행들 사이에서 운영되고 있는 '오픈 뱅킹'에만 적용돼 있다. 은행 앱에서는 한번 동의만 하면 '전체계좌 서비스'로 다른 은행에 있는 개인 계좌를 모두 모아서 조회할 수 있고 자금 이체까지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은행 뿐 아니라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들의 개인 금융정보에도 표준 API 방식이 적용된다.

2008년 네이버 통합계좌조회, 마이데이터 사업으로 결실

네이버는 2008년 9월 통합계좌조회 서비스(http://acct.naver.com)를 출시했다. 개인이 거래하고 있는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계좌 내역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은행 입출금 통장뿐 아니라 정기예금과 적금, 대출 내역도 확인할 수 있고, 주식 거래를 하고 있으면 주식 잔고와 실시간 평가금액도 볼 수 있었다. 은행, 증권, 펀드, 종합자산관리(CMA) 계좌뿐 아니라 카드 청구 내역과 승인 내역까지 원스톱 조회가 가능했다. 또 가계부 서비스가 붙어 있어 수입과 지출을 관리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은행 등 일부 금융사들은 네이버의 확장력을 우려해 제휴를 거절하면서 완전한 통합조회가 이뤄지지 않았고, 계좌 내역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서비스가 없었다. 자금 이체도 할 수 없었고 이체를 하려면 배너를 클릭해 은행 사이트로 이동해야 했다. 네이버는 회원 수를 크게 늘리지 못했고 2012년 3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네이버의 통합계좌조회' 아이디어는 2020년 데이터 3법이 시행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개인 금융정보를 활용해 금융정보 통합조회, 맞춤형 금융상품 추천·중개, 자산 관리 자문, 신용정보관리 서비스 등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개인의 동의 하에 모든 금융사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마이데이터를 통해 여러가지 금융 결합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앱에 차량번호를 등록하면 세금 납부일, 보증 기간, 리콜 정보, 엔진오일 교체시기, 타이어 교체시기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차량을 바꾸고 싶다면 네이버 앱에서 대출 등의 금융 정보와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업체들의 매출 등 정보를 기반으로 신용도를 정밀하게 측정해 대출을 할 수 있다. 일상에 관련된 정보를 금융서비스와 연결하는 것이다. 서래호 네이버파이낸셜 책임리더는 2020년 한 포럼에서 "네이버 지도와 네이버 부동산 그리고 마이데이터를 활용하면 부부의 자산과 소득수준에 알맞은 부동산 매출 추천까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헬스케어 관련 업체 10여곳에 투자...의료 마이데이터 염두

건강이력 정보는 정부가 2021년 2월 마이 헬스웨이(의료분야 마이데이터) 도입 방안과 '나의 건강기록' 앱 출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사업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정부의 마이 헬스웨이 도입 방안은 건강보험 등 공공 건강데이터, 병원 의료데이터, 개인 건강데이터 등 다양한 건강정보를 개인 중심으로 통합하고 진료·건강관리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응급상황 발생시 한번의 클릭만으로 본인 진료기록을 구급대원과 병원 응급실에 전송할 수 있고, 다운로드한 투약 이력을 외래 진료시 의사에게 보여주고 중복처방을 방지할 수 있는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생애주기별 건강검진 알림 서비스, 개인맞춤형 운동과 식이 처방 등 건강관리 서비스 등도 가능해진다.

'나의 건강기록' 앱 화면
'나의 건강기록' 앱 화면
'나의 건강기록' 앱은 국민이 의료분야 마이데이터를 실제 체감할 수 있도록 먼저 공공기관 건강정보를 조회·저장·활용할 수 있도록 출시한 것이다. 투약정보(건강심사평가원), 진료이력과 건강검진 결과(건강보험공단), 예방접종(질병관리청) 등 정보를 볼 수 있다. 개인이 원하는 경우 진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본인 건강정보를 원하는 곳에 전송할 수도 있다.

현재 인증 수단은 전자정부 인증 수단인 '디지털 원패스'와 함께 '네이버 인증서'만 있다. 네이버는 2021년 6월 보건복지부와 인증서 기술을 제공하는 '나의 건강기록' 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의료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한 네이버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네이버가 헬스케어 업체와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업체에 투자하고 있는 것도 의료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미 10여 곳에 투자를 완료했다.

네이버는 2018년 뉴플라이트와 손잡고 헬스케어 스타트업 발굴에 나서는가 하면 대웅제약, 분당서울대병원과 헬스케어 합작법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하며 헬스케어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2018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딥메디, 두잉랩, 아토머스, 아모 등에 투자했으며, 2019년에는 배뇨 소리로 질병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한 사운더블헬스에 투자했다.

2020년에는 아이크로진과 사운드짐, 엔서, 휴레이포지티브 등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4곳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들 모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로봇수술 전문가인 나군호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를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장으로 영입해 원격의료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전자의무기록(EMR) 업체 이지케어텍에 3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인수하고, 의료 데이터 분야에서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려운 건 네이버라는 플랫폼의 힘"...빅테크와 금융 결합 우려

"아마존이 당신의 은행 데이터와 자산을 파악할 수 있다고 쳐봅시다. 그렇게 되면 아마존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자율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 그 수준에 맞춰 돈을 대출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 오마로바는 일찍이 빅테크와 금융의 결합을 우려했다. 『돈 비 이블』(Don't be evil)’의 저자 라나 포루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형은행 수준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 활용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금융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책임을 강화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빅테크 기업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객의 일상을 파고든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유·활용하면서 ‘정보 우위’에 선다. 이를 기반으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 2월 내놓은 ‘빅테크의 금융서비스 확대에 따른 주요 이슈와 정책적 논의’ 보고서에서 "개인정보의 집중, 소비자에 대한 우월적 지위, 기업에 대한 높은 협상력으로 빅테크 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최적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연구원은 "빅테크에 의한 금융서비스 확대는 기존 금융시스템에 의해 구축된 정보와 거래체계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스템의 규율 체계를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미 금융사와 제휴를 통해 금융서비스를 우회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20년 6월 미래에셋그룹과 협업한 ‘미래에셋증권 CMA-RP 네이버통장’ 계좌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소상공인 대상 대출 서비스도 지속하고 있다. 1금융권은 우리은행, 2금융권은 미래에셋캐피탈을 통해 지정대리인 자격으로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사업자에게 대출을 지원한다. 지정대리인 자격으로 네이버파이낸셜이 실질적인 대출심사와 모집인을 맡고 있다.

2020년 설립한 NF보험서비스는 소상공인 의무보험 가입서비스로 현대해상이 제휴하는 형태다. 네이버파이낸셜 신용대출 서비스도 예정돼 있다.

금융위는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단순 제휴만으로는 안 되고,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금융상품 판매 대리·중개업자 자격 등을 취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쇼핑 강화 위해 유통기업과 데이터 공유하는 물류협력체 구성

네이버는 사업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로 확장하면서 플랫폼 파워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유통회사까지 네이버 플랫폼 산하에 두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물류업체와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쇼핑 분야 강화에 유통과 배송을 담당할 물류업체가 중요한 탓이다.

네이버는 2021년 7월 ‘네이버 물류협력체(NFA)’를 만들었다. NFA는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대상으로 만든 온라인 풀필먼트 데이터 플랫폼이다. 사업 출발은 중소상공인(SME)과 풀필먼트 스타트업을 연결로 시작한다. 이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물류 데이터 분석과 사업자별 물류 수요 예측 등 수치를 제공하려 한다.

참여 풀필먼트 업체는 CJ대한통운, 아워박스, 위킵, 파스토, 품고, 딜리버드, 셀피 등 총 7개다. 네이버는 이들 풀필먼트 분야 기업뿐만 아니라 택배, 프리미엄 배송, 도심 근거리 물류창고 등 사업자와도 협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네이버가 풀필먼트 사업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곳은 CJ대한통운이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202년 10월 교환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두 회사는 함께 스마트 물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1년 6월 군포와 8월 용인에 풀필먼트 센터를 세우고 AI 물류실험을 하고 있다. 두 센터에 도입된 시스템은 물류 수요예측 시스템 ‘클로바 포캐스트(CLOVA Forecast)’다. 해당 시스템으로 물류, 로봇, 친환경 패키징 등 스마트 물류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정재형 취재본부장,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