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래픽카드 대란, 엔비디아·AMD도 결국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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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2.07 06:00


암호화폐 채굴 열풍으로 인한 그래픽카드 대란은 2021년을 조립 PC 업계 최악의 해로 마무리할 참이다. 쓸만한 그래픽카드 하나 가격이 PC 한 대 수준인 100만원을 훌쩍 넘으면서 조립 PC의 가격도 2배 이상 상승했다. 오매불망 그래픽카드 가격 하락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상당수는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그래픽카드 대란의 이유 중 하나로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것을 꼽았다. 그렇다 보니, 채굴 업자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물량을 쓸어 담았다.

실제로, 새로운 그래픽카드가 출시되는 초기에는 한정된 초도 물량에 비해 수요가 몰리면서 품귀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여기에 세계 규모로 확산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까지 겹쳤다. 그래픽카드 역시 온갖 종류의 반도체가 잔뜩 들어가는 하드웨어인 만큼, 당연히 그 여파를 받았다.

외장 그래픽카드 업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엔비디아는 앞장서서 그래픽카드 대란을 막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젠슨 황 창립자 겸 CEO는 올해 6월 세계 각국 기자들과의 비대면 미팅에서 "개인용 그래픽카드를 채굴 시장에서 분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자사 그래픽카드에 암호화폐 채굴 효율을 강제로 낮추는 LHR(Lite Hash Rate) 기능을 추가하고, 채굴 전용 제품인 CMP(Cryptocurrency Mining Processor, 암호화폐 채굴 프로세서) 제품군을 출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래픽카드 대란이 계속되는 것은, 여전히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일단 앞뒤 안 가리고 물량을 쓸어 담는 채굴 업자와 그들 기준으로 판매 가격을 결정한 일부 중간 유통 업자들이 합작한 결과로만 여겨졌다.

분기별 글로벌 데스크톱 PC 출하량과 그래픽카드(AIB) 출하량 변동 추이 그래프(단위 100만) / 존 페디 리서치
엔비디아와 AMD 등 GPU 제조사 역시 그래픽카드 대란을 그저 방관한 정황이 드러났다. 시장조사기관 존 페디 리서치(JPR)는 3일(현지시각) 발표한 그래픽 애드-인 보드(Graphics add-in board, 외장 그래픽카드) 시장 보고서에서 2021년 3분기 전체 그래픽카드 출하량이 1270만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1147만장을 기록한 2021년 2분기보다 10.9%, 작년 같은 기간인 2020년 3분기보다는 25.7%나 늘어난 수치다. 즉,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대란과 상관없이 엔비디아와 AMD의 GPU를 탑재한 그래픽카드 제조와 공급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는 의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PC 수요가 늘어나고, 게임 시장이 성장하면서 고성능 게이밍 PC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픽카드가 필요한 게이밍 PC 시장이 전체 PC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얼마 되지 않는다. 2분기 1100만여장, 3분기 1200만여장이나 되는 그래픽카드가 시중에 정상적으로 공급됐다면, 충분히 세계 게이밍 PC 소비자들의 수요를 채우고도 남을만한 물량이다.

그런데,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 보는 그래픽카드 시장은 여전히 물량이 소량 풀리고, 가격은 여전히 천정부지를 찍는 상태다. 1000만여장이 넘는 어마어마한 그래픽카드 물량이 어디로 갔을까. 당연히 ‘돈이 되는’ 채굴 시장이다. 엔비디아나 AMD 같은 GPU 제조사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즉, 그들 역시 ‘공범’인 셈이다.

AMD CEO 리사 수 박사는 최근 중국의 한 테크 매체를 통해 "지난 2분기 동안 그래픽카드 출하량을 크게 늘렸지만, 그래픽카드를 구매하지 않은 게이머가 여전히 많다"며 "AMD의 모든 노력은 게이머에게 그래픽 카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용)게임 카드가 시장 수요를 충족한 후에만 다른 영역에 제공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을 늘린 그래픽카드는 결국 일반 소비자들의 손에 들어오지 못했다. 엔비디아와 AMD의 CEO들이 전 세계 소비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한 건지, 아니면 양사 경영진들이 CEO 얼굴에 먹칠을 해서라도 매출 신장에만 신경을 쓰느라 애써 모른 척하고만 있는 것인지는 외부자 입장에선 알 방도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래픽카드 대란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기업을 대표하는 CEO의 공식적인 발언조차도 믿으면 안 된다는 한발 늦은 ‘교훈’ 뿐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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