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지난해 11월 온플법 수정안을 내놓은 이유는 플랫폼 갑질 규제를 위한 추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공정위는 내부 논의를 거쳐 플랫폼 기업의 갑(거래상지위)를 정교하게 판단하기 위한 고시안도 잠정 마련한 상태다. 그러나 대선정국이 다가오고, 여야가 모두 적극적인 입법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공정위의 플랫폼 갑질 규제 의지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모습 / IT조선DB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모습 / IT조선DB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 ‘갑질'을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공정위 추진)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방통위 추진)등 2개 법안이 1월 11일 열린 임시 국회 본회의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본회의 이전에 거쳐야 하는 상임위 절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IT업계 반발에 따라 야당이 반대하면서다. 2월 임시국회는 열릴지 불투명하다.

앞서 각 주무부처인 공정위와 방통위는 규제 권한을 놓고 갈등을 이어왔다. 2020년 12월 두 법안 사이의 중복 규제 문제가 제기되면서다. 이에 여당은 중복규제를 없앤 다음, 두 법안을 함께 통과시키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고 온플법 규제 입법을 방통위와 공정위 두 곳에서 모두 관할하기로 합의했다.

온플법 수정안 내놓은 공정위, 규제 대상은 축소·갑질 판단 기준은 정교화

공정위가 지난해 11월 마련한 온플법 수정안은 이런 고민을 담았다. 특히 공정위는 업계 반발을 의식해 적용대상 기업 범위를 대폭 줄였다. 규제 대상 기업을 중개수익 1000억원 또는 중개거래금액 1조원 이상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했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명, 전사서명 외에도 약관 동의 방식을 통한 계약서 작성 의무도 인정키로 했다. 또 플랫폼의 ‘갑질'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정교하게 마련했다. 온플법 수정안에는 플랫폼 기업의 ‘거래상지위 남용‘(갑질) 금지 조항을 마련했고, 이후 별도 고시를 통해서 거래상 지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공정위가 발표할 고시에는 플랫폼 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거래상 지위(갑) 판단의 구체적 기준도 포함될 예정이다. 공정거래법 전문가와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거래의 ‘전속성'과 ‘계속성' 외에도 ‘데이터 보유 규모'나 ‘거래 빈도' 등 추가 요소를 도입할 예정이다. 플랫폼이 이용 사업자와 상당한 빈도로 거래를 해왔고, 그 플랫폼이 보유한 데이터 규모가 일정수준 이상이라면 ‘갑'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애초 공정위는 심사지침을 통해 이를 담으려고 했으나 지난 11월 온플법 수정안과 고시를 통해 해당 내용을 담는 것로 정리했다. 심사지침보다 한단계 더 효력이 높은 고시에 해당 내용을 담기로 한 것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도 이견 갈려

다만 문제는 공정위 안팎에서 수정안에 반대하는 기류가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거래상 지위를 입증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만 공정위는 새로운 플랫폼 경제 하에서는 특정 플랫폼을 거래상지위 남용(갑질)으로 판단하고, 갑질 규제를 추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봤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자사 가맹택시에 호출을 몰아줘 비가맹택시를 차별한 혐의가 확인되더라도 카카오에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를 적용하기 위해선, 공정위는 택시기사가 오랜 기간(계속성) 오직 카카오T와만 거래(전속성)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복수의 앱·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면서 거래한다. 카카오 택시 기사들 역시 카카오T만을 이용하진 않는다. 우티(우버와 티맵 합작회사)와 같은 타 플랫폼을 함께 이용하거나 다른 콜 기업을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공정위 내부에선 공정위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어야 규제 집행을 추진하는 보수적 판단을 한다"며 "위원들 역시, 공정위가 추진하려는 규제가 법원까지 가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야 규제 추진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법적으로 승산이 있다는 내부 설득이 가능하다고 확신해야 규제에 나서는 보수적 경향이 있는데,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 규제 추진이 좀 더 탄력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플법 추진이 지연되면서, 공정위의 의지가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대선까지 임박해지면서 온플법을 차기 정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 여당도 대선에 미칠 영향을 의식한다.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연출하는 건 꺼리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특히 야당이 입법 추진에 소극적인 만큼 대선 결과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 규제 논의 방향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