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는 재벌 회장이나 오너(총수)의 잘못된 판단과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해를 입히는 것을 뜻한다. 오너 일가의 그룹 장악력이 극대화된 한국 재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오너가의 결정은 기업 경영을 파행으로 이끌거나 크게는 국가 경제까지 훼손시킬 수 있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 3세가 기업 경영을 쥐락펴락할 경우 회사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최근 신세계그룹과 한화그룹은 3세 경영 체제에 본격 돌입했는데, 그룹 안팎에서 오너리스크로 인한 우려가 확산한다. 오너 3세의 투자를 실행하는 ‘손’에 주목해도 부족할 판에 가벼운 ‘입’도 화근이 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그동안 다양한 사업으로 유통 시장에서 실험을 벌였다. 하지만 경험으로 치부하기엔 뼈아픈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잡화점 ‘삐에로쑈핑’, 헬스앤뷰티(H&B) 스토어 ‘부츠’, 소주 브랜드 ‘제주소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치적인 색깔이 강한 ‘멸공’ 발언을 연이어 쏟아냈는데, 그의 입은 스타벅스커피 불매운동과 같은 역풍을 맞았다. 정 부회장의 진심이 어떻든, 잘못하면 그룹 경영을 악화할 수 있다는 시선이 적지 않게 쏟아진다.
정 부회장의 존재감에 가려있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사장도 불확실성이 큰 투자로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한화솔루션은 2020년 자본 여력이 충분하다는 안팎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1조원 가까이 투자한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3000억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철수했다.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인 김동관 사장이 전략부문장을 맡았던 2020년, 시장 침체와 중국과의 가격 경쟁 측면에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한화솔루션이 사업을 철수한 직후부터 폴리실리콘 가격이 상승했다. 이 때문에 한화솔루션은 폴리실리콘 사업에 투입한 자금 회수는커녕 가격 상승 수혜도 누리지 못했다. 오랜 적자사업을 캐시카우로 바꿀 기회를 날린 셈이다. 태양광사업 부문인 한화큐셀은 이 여파로 2021년 3분기까지 4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큐셀은 지난해 11월 18일 노르웨이 국적 기업 ‘REC실리콘’의 지분 16.67%를 1900억원에 취득하기로 했다. 미국 내 태양광 제조 밸류체인(폴리실리콘) 공조로 원료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 폴리실리콘 원가 폭등에 대응하겠다는 의중이다.
REC실리콘의 미 모지스레이크 공장은 미국산 폴리실리콘에 중국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후 가동이 중단됐다. 하지만 미국 태양광 산업 육성법안인 SEMA(Solar Energy Manufacturing for America Act)가 통과하면 REC실리콘의 가치가 오르는 동시에, 한화솔루션도 2030년까지 1조원 이상의 세제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SEMA는 미국산 태양광 제품에 세금을 돌려줘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다. 2조달러(2400조원) 규모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과거 투자 실패를 만회하려던 김동관 사장의 투자 결정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SEMA가 좌초 위기에 놓여서다. 이 법안은 지난해 중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반대 목소리를 낸 탓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원 의석비중은 50대 50인데, 민주당에서 한 표의 이탈표만 나와도 처리가 불가능한 처지다.
김 사장은 미 수소·전기 트럭업체 ‘니콜라’에 초기 투자해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차익 실현에 성공했지만, 니콜라 사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김 사장의 투자 안목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선도 생겼다.
한화솔루션 주가는 지난해 1월 21일 5만8500원에서 올 1월 17일 3만8000원대로 45% 가까이 폭락했다. 김 사장의 항공우주·재생에너지 등 광폭 투자 행보와 달리 주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주주들은 불확실성이 큰 김 사장의 신사업 투자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불안감을 드러낸다.
김 사장은 의사 결정권자인 CEO다. 리스크를 동반한 투자가 성과를 못 내고 실패할 경우 주주들의 비판은 불가피하다. 경영 수업 중이라는 핑계를 댈 시기도 아니다. CEO 자리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닌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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