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시장에 의존한다는 평가를 받던 중국 배터리 기업이 북미와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며 K배터리 진영을 위협한다. K배터리는 최근 원자재 가격 폭등에 발목을 잡혔지만, 원자재 확보가 용이한 중국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북미·유럽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7일 배터리 업계와 외신 등을 종합하면,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인 중국 CATL은 최근 6조원을 투자해 북미에 연간 80GWh 생산능력을 갖춘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멕시코와 미국, 캐나다 등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점유율 8위 중국 궈쉬안은 독일 보쉬 공장을 인수해 첫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할 예정이며, 북미에도 배터리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10위권인 EVE도 헝가리에 원통형 배터리 셀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AESC는 르노와 프랑스에 생산 거점(30GWh)을 짓고 메르세데스벤츠와 미국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구축한다.
1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1~2월 세계에서 사용된 CATL의 배터리 규모는 2021년 동기 대비 158.5% 늘었다고 분석했다. 2월까지 누적 점유율은 지난해 27.5%에서 올해 34.4%로 상승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의 2월 기준 누적 점유율은 2021년 20.7%에서 올해 13.8%로 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3사는 니켈·코발트·망간 등을 원료로 한 '삼원계’ 배터리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성능이 주행거리라는 점에서 LFP 보다는 삼원계가 우위에 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최근 원자재 급등으로 당장의 배터리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배터리 수요 비중은 2022년 49%에서 2030년엔 39%로 줄어들지만, 글로벌 전체로 볼 때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유럽은 29%에서 25%로 줄어드는 반면, 북미는 17%에서 28%로 성장해 북미가 2029년부터 유럽 비중을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요 비중이 차츰 줄어드는 중국 시장과 달리 빠르게 성장하는 북미 시장에서 K배터리가 압도적 주도권을 지켜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K배터리가 핵심 거점인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지속해서 주도권을 쥐려면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파우치·원통·각형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전고체·리튬황 등 차세대 기술 전환에도 늦지 않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