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과학’은 우리 주변과 옆집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하고 다양한 현상에 담긴 과학 원리를 소개합니다.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일상 속에 숨겨진 과학은 무엇인지 알려드립니다. <편집자주>
우리는 친구 또는 가족 등과 함께 식사를 하며 똑같은 음식을 먹지만, 각자 느끼는 맛의 정도나 음식의 선호도는 사람에 따라 갈리게 되기 마련이다. 특정한 음식이나 맛에 대한 선호도는 자라온 환경 또는 음식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선천적인 요소인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쓴맛을 구분하도록 만드는 TAS2R38 유전자는 대부분 사람에게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TAS2R38 유전자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각각 변형돼 서로 다른 TAS2R38유전자를 보유해, 쓴맛 미각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가 다른 경우도 있다.
변형된 TAS2R38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 중, 쓴맛 미각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가 낮아진 사람(PAV)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쓴맛을 덜 느낀다. 다른 사람보다 유독 술이나 오이 등에서 쓴맛을 잘 느끼낀면, TAS2R38이 쓴맛을 덜 느끼도록 진화한 사람인 셈이다.
TAS1R 유전자는 TAS1R2이나 TAS1R3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각각 유전자 변형에 따라 느끼는 음식의 감칠맛·단맛의 인식 정도가 달라진다.
공교롭게도 이런 미각 수용체들은 과음이나 폭식을 부르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일례로 과음이 잦은 사람의 경우 대부분 TAS2R38 유전자가 쓴맛을 덜 느끼도록 변형됐거나, 단맛·감칠맛을 잘 인지하도록 바뀐 TAS1R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경우 소주나 와인 등 알콜성 음료에서 느껴지는 역한 쓴맛은 덜 느끼고, 단맛을 더 잘 경험하게 되면서 과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TAS1R 유전자가 단맛이나 감칠맛을 너무 느끼지 않은 경우에도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음식에 대한 단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수록 설탕 등 당류를 조리나 식사중에 과다 투여할 확률이 높아지고, 단맛에 쉽게 물리지 않으면서 초콜릿 등 비만을 유도하는 군것질 식품을 자주 찾게될 수 있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