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만든지 10년이 넘은 애플, 삼성전자도 못 고치는 고질병이 있다. 바로 사진을 촬영할 때 발생하는 '플리커 현상'이다. 실내 촬영 때마다 발생하는 검은 줄과 얼룩이 이용자의 짜증을 유발한다. 꾸준히 제기된 제품 결함이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는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모듈을 만드는 부품업체 역시 내 탓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IT조선은 플리커 현상 사례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플리커 현상(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화면에 검은 줄무늬와 멍 등이 나타나는 현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고 개선의 주체는 누구일까. IT조선은 카메라 부품과 완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으나, 모두 책임이 없다고 일축했다. 제조사 측은 들어본 적 없는 문제라며 이슈에서 발뺌했다.

디지털카메라 업계의 경우, 예전부터 플리커 현상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안티 플리커와 같은 플리커 현상 차단 기능을 탑재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 업계와 정반대 행보다.

소비자 단체와 전문가들은 제조사가 사전에 관련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단말기를 팔았다면 보상 등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26일 스마트폰 제조사 및 부품 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플리커 현상 발생과 관련한 개선 의지나 책임을 지겠다는 곳은 없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너도나도 책임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제조사에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IT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 갤럭시 단말기에서 사용하는 카메라 모듈을 납품한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플리커 현상과 관련해 "플리커 현상은 카메라 모듈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조명의 주파수 문제로 발생하는 것이다"며 "엄밀히 말해 셔터 스피드 문제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납품하는 우리 업체와 관련된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애플 아이폰용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는 LG이노텍 측은 "플리커 현상을 인지하고 있지만, LG이노텍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완제품 회사에 문의하라"며 "단순히 카메라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 단언해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전기가 납품하는 카메라 모듈 / 삼성전기
삼성전기가 납품하는 카메라 모듈 / 삼성전기
종합하면, 카메라 납품 업체는 해당 단말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만 제공했기 때문에 완제품에서 발생한 문제를 알 수도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한술 더떠 완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사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해당 현상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플리커 현상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셈이다.

카메라 모듈 및 스마트폰 제조사의 태도와 관련해 소비자 단체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기술적으로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고지했을 경우 문제가 생겨도 납득할 수 있지만, 플리커 현상처럼 관련 내용에 대해 안내하지 않았을 경우 황당할 수밖에 없다. 피해 보상과 같은 후속 조치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LG이노텍 카메라 모듈 / LG이노텍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LG이노텍 카메라 모듈 / LG이노텍
LED와 같은 조명 아래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 플리커 현상이 발생한다고 알고 있다면 모를까,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고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계속해서 부품 업체나 제조사가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스마트폰에 대한 신뢰도 추락에 따른 판매량 감소 등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카메라로 촬영한 최종 결과물인 사진에 문제가 없어야 결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카메라에 문제가 없고 제품 자체에도 문제가 없다는 제조사 주장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이어 "플리커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수 없다고 해도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나 관련 내용을 소비자에게 사전 고지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모르고 제품을 선택한 소비자가 있다면, 당연히 단말기 교환이나 A/S 등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불편을 느낀 소비자가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했다면,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든 혹은 완제품을 만든 제조사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리커 현상을 모를리 없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고객사인 부품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품 출시 전 충분한 협의와 검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사부터 플리커 현상에 대해 ‘모르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멀리하면, 결과적으로 부품사 역시 책임을 떠넘기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과)는 "보통 소비자들은 제품 관련 문제에 대해 구매 전보다 후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플리커 현상이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비자에게 사전에 고지가 됐어야 하며, 사전 고지나 안내 없이 제품이 판매됐다면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zzon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