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의 시대] ② 수기 문서에 직인 도용… 700억 빼돌린 10년동안 우리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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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8.02 06:00
"은행권 종사자들에게 우리은행 횡령은 금기어입니다. 좋은 일도 아닌데 괜히 떠들고 다닐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다른 은행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요."

전대미문의 횡령사건 이후, 은행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은행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액수에 놀라고,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혐의 인정…8년간 8차례 걸쳐 치밀하게 ‘697억원’ 횡령

지난 7월 8일 우리은행 횡령 사건의 두 번째 공판. 회삿돈 약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 A씨와 동생 B씨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다"고 했다. 반면 공범 혐의를 받는 개인투자자 C씨는 "받은 돈이 범죄수익인지 몰랐다"며 부인했다.

직원 A씨와 동생 B씨는 횡령 혐의 이외에도 2013년 1월 외화예금거래 등을 신고하지 않고,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50억원을 송금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개인투자자 C씨는 A씨로부터 투자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횡령금 일부인 16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횡령한 자금은 과거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이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자금으로 채권단에 맡겼던 계약 보증금의 일부다. 대(對)이란 제재로 계약금 송금이 몇 년간 막혀있어 우리은행이 대신 맡았다. 그러던 중 올 초 외교부가 미국으로부터 특별허가서를 받았고, 이란에 돈을 돌려줘야 하자 범행이 발각됐다.

이번 사고를 조사한 금융감독원은 A씨가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년간, 8회에 걸쳐 총 697억3000만원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씨 횡령은 2012년 6월 우리은행이 보유하던 모(某) 업체의 출자전환 주식 42만9493주를 무단 인출한 데서 시작한다. 당시 시가로 따지면 23억5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이후 공소장에 명시된 대로 우리은행이 채권단을 대표해 관리 중이던 대우일렉 매각 계약금 614억5000만원을, ▲2012년 10월(173억3000만원) ▲2015년 9월(148억1000만원) ▲2018년 6월(293억1000만원) 등 총 3회에 걸쳐 은닉했다.

금감원은 추가 횡령 사안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는 대우일렉 인천공장 매각 계약금 등 59억3000만원을, ▲2014년 8월(56억원) ▲2017년 1월(8000만원) ▲2017년 11월(1억6000만원) ▲2020년 6월(9000만원) 등 네 차례에 걸쳐 추가 횡령했다.

직인 도용하고, 문서는 수기로...우리은행, 횡령범 1년 무단결근도 몰랐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횡령사고가 알려진 다음 날인 4월 28일부터 우리은행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 발표에서 "개인의 일탈이 주된 원인"이라면서도 "대형 시중은행의 본부 부서에서 8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7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의 횡령이 발생한 데에는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번 횡령 사건이 조기 적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본부 부서에서 자행 명의 통장의 거액 입출금 거래가 이상거래 발견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횡령을 저지른 우리은행 직원 A씨는 10년 이상 ‘기업개선부'라는 동일 부서에서 동일한 업체를 담당, 이 기간 동안 명령휴가 대상에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는 "대외기관으로 파견을 간다"고 구두로 허위보고를 올리고 1년 넘게 무단결근했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중소금융 담당 부원장은 "A씨는 1년 2개월동안 외국에 있었다"며 "우리은행은 의심 없이 파견을 승인했고, 금감원 검사 전까지 이것이 허위보고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대외 수‧발신공문에 대한 내부공람과 전산등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A씨가 대외 수‧발신공문 은폐 또는 위조를 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A씨는 통장과 직인을 모두 직접 관리, 정식결재 없이 직인을 도용해 예금을 횡령했다. 모두 전자결재가 아닌 수기결재 문서 형태로 전산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 전산등록이 안 돼 있다 보니 결재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한 사전확인이나 사후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출금전표나 대외발송 공문의 내용이 크게 달랐지만, 직인이 날인돼 조기 발견이 어려웠다.

출자전환 주식의 출고 신청자와 결재 OTP 관리자(보관 부서금고 관리자) 역시 분리되지 않아 사고자가 동시에 담당, 무단인출이 가능했다. 양진호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장은 "금고에 있는 OTP를 꺼낼 때 팀장 열쇠를 훔쳐 사용했다"고 했다.

대우일렉 매각 몰취 계약금이 예치된 자행 명의 통장 잔액의 변동상황이나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출자전환 주식의 실재 여부에 대한 부서 내 감사 역시 시행되지 않았다. 또한 은행 명의 통장의 거액 입출금 거래가 이상거래 발견 모니터링에 포함되지 않는 등 우리은행의 허술한 내부통제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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