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 평가모델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금리상승기에 취약차주 보호라는 숙제를 떠안은 만큼, 개인대출 보다는 기업대출에 좀더 신경 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들은 최근 기업 신용평가모형(CSS)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머신러닝과 같은 기술을 도입, 제대로 된 우량기업은 발굴하되 부실기업은 속아내겠다는 각오다.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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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대출 심사에 공들이는 시중은행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예전 일일이 직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기업대출 심사가 빅데이터 중심으로 고도화돼 처리되고 있다. 심사시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업의 재무정보 외에 ▲매출 관련(매출 집중도, 매출처 신용도)자료 ▲인력 관련(해당 사업체 종업원 수 변동 등)자료 ▲ESG를 포함한 사회적 책임 경영 ▲기술 경쟁력 ▲소유 부동산 등 비재무 데이터 등을 AI와 머신러닝 기술이 들여다 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는 심사직원이 해당 기업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운영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해 좋은 점수를 주거나, 감사를 받지 않는 비외감법인의 경우 재무제표가 신뢰있게 작성됐는지 파악하기 어려움을 겪는 등 평가에 일관성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업 CSS 고도화 이후 경험이나 정보수집 능력 등 개인의 심사역량 격차가 축소돼, 표준화된 심사가 가능해졌다"고 답했다.

최근 KB국민은행은 AI 기술이 적용된 머신러닝 모형 기반의 ‘기업여신 자동심사 지원시스템(Bics, Big data CSS)’을 도입했다. 빅스(Bics)는 재무정보와 대안정보를 포함한 각종 비재무정보를 활용, 신용리스크가 낮은 대출건을 기업대출 심사 담당자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향후 우량기업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최신 데이터를 활용, 매년 주기적으로 모형을 업그레이드하는 재학습 모형도 구축했다. 자동심사를 마친 건은 기업개요, 재무 현황과 분석의견, 시스템 판정결과 등이 반영된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 심사 담당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신용평가모형(CSS)에 신 기술을 도입, 꼼꼼하게 대출을 심사하기는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기업신용평가 부분 전체 항목에 ‘비재무 객관화' 모형을 적용했다. 기존 국민연금, 국세청 세무정보와 같은 데이터뿐 아니라, 금융결제원 정보(매출채권, 자동이체 등)도 활용했다. 기업 신용평가 시 정성적으로 평가했던 사업, 경영위험 등 비재무적 요인을 최신 데이터를 활용해 평가하게 한 것.

IBK기업은행은 ‘기업여신 자동심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빅데이터 등 최신 신용정보를 활용해 기업의 신용 상태를 진단하게끔 만들었다. 기술력이나 미래 성장성을 반영한 기업별 맞춤형 여신한도를 산출, 대출 승인 의사를 결정한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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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45조 증가…덩치 커지는 기업대출 시장

시중은행이 기업 CSS를 고도화하는 데에는 저간의 사정이 얽혀있다. 금리 상승기지만 정부는 시중은행들에게 이자부담이 가중될 취약차주를 보호하라고 엄포를 내린 상황이다. 이에 시중은행은 금리인하 등 가계 대출 부담을 줄여야 한다.

기업대출 시장은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 실제 기업대출 잔액은 증가추세다. 5대 시중은행의 7월말 기업대출 잔액이 681조6743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달 대비 7조9191억원 증가, 지난해 연말과 비교하면 45조7865억원이 늘어난 수치다.

이 중 대기업 대출은 94조6363억원. 지난 6월 대비 2조7119억원, 지난해 연말보다 12조2271억원 증가했다.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은 587조379억원이다. 지난달 대비 5조2073억원, 지난해 연말과 비교 시 33조5594억원 불어났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 추이. / 각 사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 추이. / 각 사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의 경우 주요 대형은행의 중심 성장 목표인 법인 중소기업 성장률이 11% 내외로 연간 성장률을 유지, 회사채 발행금리 급등에 따라 대기업 대출도 연간 12% 증가했다"며 "이에 따라 기업대출 수요가 은행의 공급 의지와 함께 동반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기업의 신용위험도 주목해야 할 주요 변수가 됐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용위험 수치는 대기업이 8에서 11로, 중소기업은 25에서 31로 높아졌다. 숫자가 클수록 위험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는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에 영향 받아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기준도 엄격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불확실한 대내외 경기 상황과 이에 따른 여신 건전성 관리 등도 한 몫했다. 같은 조사에서 은행권의 대출태도는 지난 2분기와 다가올 3분기를 비교한 결과, 대기업은 3에서 마이너스 6으로, 중소기업은 6에서 마이너스 6으로 집계됐다. 지수가 음이면 대출태도가 강화할 것이라 답한 숫자가 많음을 뜻한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