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하는 날’

 

밸런타인데이의 정의다. 설마 했는데 정말 우리나라에서의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는 이랬다.

 

원래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경 로마의 사제 밸런타인의 처형을 기리는 날이었다. 사제의 죽음을 기리는 날이 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되었을까. 고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군인을 모으던 황제는 군인들을 더 많이 모으고 전쟁에 집중하게 하려고 결혼을 금지한다. 이때 사랑의 존재를 믿었던 밸런타인 신부는 황제 몰래 사람들을 결혼시켰다. 결국 밸런타인 신부는 그 사실이 들통나 2월 14일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밸런타인 신부는 처형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래서 밸런타인데이는 나의 밸런타인이 되어 달라며 사랑을 전하는 날이 됐다.

 

로맨틱한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 따위가 등장하던 날이 아니었다. 업체들의 상술에 빠지고 난 후 밸런타인데이는 솔로에게나 커플에게나 귀찮은 날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밸런타인데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Women said

크리스마스, 구정 연휴 정신 없이 보내니 어느새 밸런타인데이다. 이번만큼은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초콜릿이라는 걸 만들어 보려고 한다. 흔한 초콜릿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니까. 어차피 녹였다가 틀에 넣고 다시 굳히면 되는 거 아닌가.

 

마트에서 초콜릿을 죄다 쓸어와서 중탕했다. 쉽지 않다. 초콜릿이 너무 금방 굳는다. 어렵사리 모양틀에 넣고 냉장고에 얼렸는데 뜯어내는 도중 모양이 깨지기 시작했다. 물로 봤던 초콜릿 만들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부서진 초콜릿을 먹어봤는데 ‘응?’ 맛조차 원래의 달콤하던 맛이 아니다.

 

괜히 정성을 보여준다고 설치다가 안 하느니만 못한 선물을 주게 생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맘 상한다. 왜 여자가 먼저 줘야 하냐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아니다. 이게 다 일본의 마케팅에서 비롯됐다. 1960년 일본의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초콜릿으로 사랑 고백을 하라며 캠페인을 벌인 후로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하는 날이 됐다는 것.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이 문화는 일본의 문화지 우리나라의 문화는 아니다.

 

게다가 한달 뒤 화이트데이에 받는 선물은 마치 내 밸런타인데이 선물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져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기브앤테이크가 웬 말인가.

 

거기다 화이트데이는 사탕이라니. 나도 초콜릿 먹을 줄 안다. 화이트데이라는 건 또 왜 등장해서 초콜릿과 사탕을 따로 놀 게 만드냐는 말이다. 화이트데이마저 1965년 일본의 마시멜로 제조업자가 만들었다. 갑자기 내가 하고 있는 짓이 바보 같이 느껴진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초콜릿은 망쳤고 밸런타인이 원망스러워 진다.

 

 

Men said

쿨한 척 하지만 은근 기대하게 되는 밸런타인데이다. 이번엔 특별히 솜씨를 발휘해본다는 여자친구 덕에 더 기대가 된다.

 

여자친구가 선물을 내밀었다. 직접 만든 초콜릿이다. 드디어 나도 여자사람이 만든 초콜릿을 먹어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어쩐지 여자친구가 의기소침해져 있다. 자신 없이 초콜릿을 내미는 여자친구를 기분 좋게 하려고 초콜릿을 덥석 입에 넣었다.

 

이거였다. 여자친구가 의기소침한 이유. 그래도 마음이 예뻐서 맛있게 먹어줬다. 문득 이걸 매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걱정이 앞선다. 정성이 담긴 초콜릿은 이번으로 족하다. 왠지 배도 살살 아픈 것 같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는 나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꽂힌 것 같다. 사람들의 눈빛이 “여자친구한테 초콜릿 받았다고 유세하냐”고 묻는 것 같다. 게다가 이런 화려한 핑크빛 바구니는 나란 남자와 어울리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내년의 대처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속옷을 받았다며 자랑해온다.

 

아… 어떻게 하면 내년엔 맛있는 초콜릿과 함께 실용적인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ㅜㅜ

 

 

Singles said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였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는데 길거리 커플들이 심상치 않다. 그들의 손에는 휘황찬란 바구니가 들려있다. 그랬다.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였다.

 

이런 날은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괜히 거리의 연인들을 심통 난 얼굴로 쳐다보게 된다. 친구에게는 사실 난 초콜릿을 안 좋아한다던가, 저런 바구니에 들어있는 초콜릿은 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이라는 등 이런저런 얘기로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이건 열등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어울리지 않는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 바구니에 들어있는 묻지마 초콜릿(?)들은 정말 출처를 알 수 없다. 차라리 ㅍㄹㄹㄹㅅ 세트를 선물하는 게 백 번 낫지 싶다.

 

게다가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이 등장한 것은 제과업체의 마케팅으로 시작된 문화다. 일본의 한 제과업체가 “밸런타인데이 = 초콜릿 선물하는 날”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밸런타인데이는 상술에 놀아나는 안타까운 문화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발렌타인데이>만 봐도 그렇다. 서양에서의 밸런타인데이는 프로포즈하기 좋은 최적의 날, 친구가 연인이 되는 날, 지루했던 사랑을 다시 불태우는 날로 비춰진다. 남녀가 구분 없이 서로 사랑을 맹세하고 확인하는 날이라는 것.

 

 

I said

전부 일본의 상술이라고 푸념을 늘어놨지만 어쨌든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서로의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연인이든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어색하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해볼 수 있는 날이다.

 

결론은 이렇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연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 족하다. 선물을 하려거든 실용적인 것으로 마련하라는 것.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까’다.

 

만약 연인이라면 이어지는 기사 ‘로맨틱한 밸런타인데이를 보내는 법’을 보며 무엇을 선물할지,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지 고민해 보자.

 

그런데 만약 당신이 솔로라면 쿨하게 넘기자. 알고 보면 XX데이 챙기기 그거 엄청나게 귀찮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것도 싫다면 지금 고백해도 늦지 않다. 밸런타인데이엔 고백 성공률이 소폭 상승한단다.

 

마음을 담아 “Be my Valentine?”

 

IT조선 염아영 기자 yeoma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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