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과학기술 분야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고 정규직 전환 비율도 단 1%에 불과하다. 정규직 전환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도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하면서 전문인력이 대거 이직을 선택하고 결국 전체 과학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재직자 1만6128명 중 4777명이 비정규직이다. 전체의 29.6%로 3명 중 1명 정도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비정규직 비중이 57%로 남성 22%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 분야의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 문병호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받은 ‘연구회 정규직 비정규직 연봉 내역’을 보면, 25개 출연연의 2013년 정규직 평균 연봉은 6407만 원인 반면 비정규직 평균 연봉은 절반 수준인 3430만 원에 그쳤다. 비정규직은 복지비에서도 차별을 받아 철도기술연구원의 경우 지난해 정규직 1인당 복리후생비를 237만 원 썼지만, 비정규직은 1/20 수준인 11만 원에 그쳤다.

 

<표> 연도별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비 임금 비율 (단위 : 천 원, 표=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러한 차별은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더 가혹했는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현황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해 통계를 내보니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출산 휴가는 정규직 대비 60.5%, 육아휴직은 단 11.7%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업무는 정규직과 사실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연구과제 책임자 470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연구원의 60% 이상이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업무에 차별적 처우는 결국 직장을 등지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송호창 의원실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2014년 8월까지 정보보호와 침해대응을 담당하는 보안부서에서 304명이 퇴사했는데, 이들 중 비정규직 비율이 정규직 대비 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부서는 업무 특성상 전문성과 연속성이 필요하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73%에 달했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높은 비정규직 비율은 일자리의 불안을 가중시켜 숙련된 전문인력의 유출을 가져왔다”며 “전문인력의 빈자리는 다시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채우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유승희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미래부는 지난해 7월 비정규직 연구인력 2500명 가량을 2016년까지 정규직화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 정도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올 7월 새로 내놓은 계획을 보면 정규직 전환 인원이 애초 계획의 1/10인 230명 정도로 줄었다. 실제로 지난 4년간 비정규직 직원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전체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연도별 출연연 비정규직 전환율 (단위 : 명, 표=송호창 의원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비정규직 연구원의 50%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현재 기재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출연연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이고 기관별 계획을 확정한 후 전환할 계획”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되는 것은 정규직 전환 규모만이 아니다. 기재부는 출연연 비정규직 비율을 2017년까지 20~30%로 낮추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유승희 의원실이 추산한 것을 보면, 20%로 확정될 경우 많게는 2000명이 넘는 인력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규정은 정규직 전환 비용을 해당 기관이 부담하게 해 정규직화보다는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승희 의원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비정규직의 대규모 실업사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규직화 규모를 애초 계획대로 되돌리고 전환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호창 의원도 “출연연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은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저해하고 우수 인력이 이탈하는 원인”이라며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과 함께 정규직 전환 규모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