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바둑에서 만큼은 인간이 인공지능(AI)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중국 랭킹 1위 프로바둑 기사인 커제(20)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예상된 패배를 당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커제(20) 프로바둑 기사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다음 수를 고심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커제(20) 프로바둑 기사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다음 수를 고심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커제 9단은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 국제인터넷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인간과 인공지능의 두 번째 세기의 대결에서 1집 반의 차이로 패배했다. 대국 전부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승리에 무게를 둔 만큼, 이번 세기의 대결은 승패를 떠나 AI기술의 현 주소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 더 강력해진 인공지능 알파고, 289수 만에 1집 반 승리

커제 9단은 흑(黑)을 쥐고 첫수로 우상귀 소목을 공략했다. 공격적인 싸움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치열한 전투가 유행인 근래 바둑계에서 잘 두지 않는 수다. 커제 9단 역시 그동안 안정적인 바둑보다 상대를 흔들어 싸움에 끌어들이는 기사로 유명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수를 꺼내들었다.

커제 9단이 바둑 전략을 변경한 이유는 그간 커제 9단의 기보를 연구한 알파고에게 혼란을 주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알파고는 커제 9단의 노림수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289수 만에 1집 반을 앞서며 예상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알파고 2.0은 한 수를 두기 전에 약 20초 동안 평균 250개가 넘는 경우의 수를 정확히 계산하고 응수했다. 같은 시간 동안 사람의 뇌는 평균 3개~4개 수를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수치적으로 환산하면 알파고가 사람보다 최소 80배 이상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승부는 시작부터 알파고 쪽으로 기우는 양상을 보였고, 대국 중반으로 넘어서가면서는 확연한 실력 차이를 드러냈다. 이번 대국에서의 승패는 사실상 168수만에 결정났다. 커제 9단이 형세를 뒤집으려 했지만, 사실상 알파고 승리가 확실시 됐다.

이번 대국으로 알파고 2.0은 지난해 3월 이세돌(35) 프로기사 9단과 실력을 겨뤄 4대 1로 승리한 알파고 1.0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현 상황을 볼 때 나머지 경기를 관전하지 않아도 알파고의 완승이 예상될 정도다.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변경된 시간 적용 기준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경기에서는 각각 2시간씩 1분 초읽기 3회씩이 주어졌지만, 경기 후반 초읽기에 몰린 이세돌 9단이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행사 주최 측은 이번 대결에서도 지난해와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커제 9단과 알파고 모두에게 3시간에 1분 초읽기 5회를 부여했지만, 인간 프로바둑 기사에게 유리하게 재조정된 룰도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 인공지능 기술, 바둑 넘어 전방위 산업 분야서 '맹활약'

알파고 2.0으로 재확인된 인공지능 발전의 가속화 현상은 타 산업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한해가 각 산업군에서는 인공지능을 자사 서비스에 접목하기 위한 학습연구를 진행한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완성단계에 이른 인공지능이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첫해가 될 전망이다.

SK주식회사 C&C는 인공지능 기술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한 곳이다. 올해 이 회사는 인공지능 분석 서비스를 내세워 스마트 팩토리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에는 베가스와 협력해 제조와 하이테크 산업용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스키테일'을 고도화 중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분야의 투자를 확대하고, 서비스에 접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2012년부터 인공지능 연구조직 'AI랩'을 신설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올해 초 진행된 세계최대 게임개발자 컨퍼런스인 'GDC 2017'에서 PC온라인게임 블레이드앤소울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가상현실게임을 공개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자사 게임에 접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통신업계 중에서는 KT가 5월초 일부 조직 개편해 인공지능 TV '기가지니'를 전담하는 기가지니사업단을 신설했다. 주 업무는 기가지니 마케팅과 신규 서비스 개발, 사업 제휴 등을 통한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으로, 올초 KT가 선보인 셋톱박스인 IPTV(올레tv), 홈 사물인터넷(IoT) 기기 등과 연동한 인공지능 홈비서, 홈 IoT 허브, 음성 및 영상통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섰다.

IT서비스 업계 한 관계자는 "커제와 알파고의 대국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다시 일반인의 관심을 받게 됐다"며 "인공지능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올해 중반부터는 각 산업계로 빠르게 적용될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