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N번방 범죄 등을 뿌리뽑기 위해 처벌을 강화한다. 법정 형량을 종전보다 높이고, 아동·청소년 관련 영상을 소지한 자는 물론 구매 이력이 있는 자도 처벌한다. 성범죄물 소지할 때도 처벌에 나선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불법 게시물 발견 시 즉각 삭제해야 한다. 알고도 지우지 않을 경우에는 징벌적 과징금 처벌을 받는다.

정부는 2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심의‧확정했다. 회의에는 과기부‧기재부‧교육부 등 15개부처 장관과 국조실장, 방통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기존 대책 수립 시 상황과 최근의 범죄양상 비교표 / 국무조정실
기존 대책 수립 시 상황과 최근의 범죄양상 비교표 / 국무조정실
최근 텔레그램을 이용한 n번방, 박사방 사건 등은 사회적인 충격을 준 범죄 활동이다.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 중이다. 피해자 중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됐으며, 악질적 범죄 수법으로 많은 국민의 공분을 산다.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디지털 성범죄 방지대책을 마련해 추진했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른 범죄수법의 진화와 폐쇄적 해외 플랫폼 사용 등 신종범죄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9개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강력한 대책을 마련했다. 대책에는 여성계와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담았다. 종전 대책은 불법촬영 등 범죄수단별 타겟형 대책이었지만, 이번 대책은 신종범죄에 대한 사각지대가 없도록 디지털 성범죄 전반을 포괄하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물’ 의 범위를 ▲변형카메라 이용 불법촬영물 ▲합성‧편집물(딥페이크 등)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협박‧강요‧그루밍 등에 의한 촬영물 포함)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한 영상물 등을 포괄해 지정했다.

4대 추진전략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확립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강화 ▲처벌 및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 ▲중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 등을 정했으며, 17개 중과제와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정부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아 처벌이 충분치 않았으나, 앞으로는 중대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정 형량을 상향한다. 미성년자 강간도 중대범죄로 취급해 실제 범행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준비하거나 모의만 해도 예비·음모죄로 처벌한다. 법정 형량도 높인다. 검찰은 9일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화된 사건처리기준과 구형 기준을 우선 마련해 시행 중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대폭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 중이다.

또한, 수사단계에서부터 사안이 중한 피의자는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의 신상공개 대상이 종전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등 성폭력범으로 한정되던 것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판매한 자도 확장한다.

아동·청소년을 유인해 길들임으로써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 조항도 신설하며,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는 13세 미만에만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기준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상향한다.

디지털 성범죄물은 은밀하게 유통되는 만큼 탐지하기 어렵다. 정부는 수사관이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해 수사하는 잠입수사를 디지털 성범죄에 도입한다. 잡입수사는 현재도 마약 수사 등에 활용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로 벌금형을 받으면 학교·어린이집 등에 취업할 수 없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착취물은 소지만 해도 처벌되지만, 앞으로는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소지하는 경우도 처벌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죄를 신설해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해도 처벌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 게시물 삭제절차를 더욱 간소화할 수 있는 선삭제 후심의 절차를 도입한다. 인터넷 사업자는 불법 게시물 발견시 바로 삭제해야 하며, 유통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기존 웹하드사업자에서 모든 사업자로 확대한다. 위반 시 징벌적 과징금 조치를 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끝까지 뿌리 뽑는다는 자세로 온 역량을 모아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