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 성공할 것이다’ vs ‘삼성이라 힘들 것이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디지털 통합 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금융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보험과 카드, 증권 등 전통 금융 계열사들과 함께 모아 빅테크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한 것이란 관측에서다. 


시장에선 삼성이 디지털 금융 분야의 시너지를 기획했다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라는 반응과 함께 적지 않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공룡의 DNA에 가까운 삼성이 속도와 민첩성이 생명인 디지털 금융에서 이름 값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상존한다.

삼성금융 계열 사장단(왼쪽부터)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 장석훈 삼성증권 대표, 김대환 삼성카드 대표. / 각사
삼성금융 계열 사장단(왼쪽부터)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 장석훈 삼성증권 대표, 김대환 삼성카드 대표. / 각사

삼성카드가 운영 및 개발 주축…거대 고객 데이터 확보로 통합 금융 서비스


16일 삼성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생명과 화재, 카드, 증권 등 4개사 데이터를 합친 통합 금융앱 ‘모니모(가칭)’를 준비 중에 있다. 통합앱은 삼성카드 주도 하에 개발 중이나 앱 명칭이나 포인트 이름 등 구체적 사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금처럼 활용 가능한 통합 포인트 보상 서비스인 젤리도 변동 가능성이 열려있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 세부적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각사 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축하려 한다”고 말을 아꼈다. 


모니모는 고객이 보유한 삼성 금융 계열사의 계좌를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이다. 오픈뱅킹 서비스가 가능해 간편 송금 기능도 갖출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삼성 금융 계열사의 상품이 한 데 결합돼 서비스가 한층 다채로워질 전망이다 . 예컨대 자동차 관련 서비스를 붙이면 시세 조회에서 부터 견적, 할부 프로그램, 보험 가입, 담보 대출 등 원스톱 자동차 금융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등 여타 자산도 마찬가지. 


삼성은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삼성카드가 시스템 구축 및 운영의 주축이 되고, 나머지 3곳이 투자금을 분담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 174억원, 삼성생명 143억원, 삼성증권이 74억원의 비용을 부담키로 했다.


각 사는 하나의 플랫폼을 출시하면 거대한 트래픽을 확보할 수 있음과 동시에 거래량도 월등히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고객 수는 삼성카드 1072만명, 삼성화재 1055만명, 삼성생명 820만명, 삼성증권 400만명으로 집계된다. 4개 계열사의 가입자 수가 중복을 포함해 3200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빅테크·대형 금융사 성공 방정식 접목…삼성페이와의 시너지 


증권가에선 삼성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디지털 금융의 확산 초기, 기술과 아이디어에서 우위에 있는  빅테크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다, 차후 전반적인 운영 노하우에서 앞선 대형 금융사들이 서비스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 다시 따라 잡았던 여러 사례를 언급한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빅테크 기업이 플랫폼을 운영의 장점을 지니고는 있지만, 실제 시간이 지나면 금융사가 앞설 수밖에 없다”며 “초기 미국 핀테크 시장에서 인공지능(AI) 등 테크 중심의 회사의 점유율이 높았지만 4~5년이 지난 지금은 운용 노하우를 지닌 금융사가 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스의 성공 이후 국내에서도 같은 성공 방정식이 통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에 여러 개로 분산됐던 앱을 통합해 하나의 앱으로 만들면 트래픽을 집중시킬 수 있어 국내 금융사들이 통합앱 구축에 적극적”이라며 “KB금융 같은 경우만 봐도 KB스타뱅킹이라는 통합앱을 내놓으며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빅테크와 대형 금융사의 성공 사례를 학습한 삼성이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동원할 것이란 전망이 뒤따른다. 계열사들이 투자한 390억원은 초기 투자자금에 불과하다는 것. 


사용자수가 1500만명에 달하는 삼성페이와의 결합도 기대감을 더한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4개의 업권이 같이 상품을 개발하는 식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상당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며 “삼성페이를 통한 대량의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훨씬 강력해 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금융사옥 전경. / 삼성증권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금융사옥 전경. / 삼성증권

삼성생명으로 귀결되는 수직구조가 난관 


하지만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우선 복잡한 삼성 금융 계열사 내부의 이해관계다. 삼성카드가 주도한다고 하지만, 삼성 금융의 맏형은 어디까지나 지주사격인 삼성생명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삼성생명은 각각 삼성카드 71.9%, 삼성증권 29.6%, 삼성화재 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덩치만 봐도 비교가 안된다. 지난 9월 말 기준 4곳의 총 자산규모를 보면 삼성생명 336조원, 삼성화재 93조원, 삼성증권 66조원, 삼성카드 26조원 순이다. 삼성의 설명대로라면 막내가 큰 그림을 그리는 형국이다. 


실제 내부에서도 이러한 우려가 상존한다. 삼성의 전 고위 관계자는 “삼성 금융 조직 중 입김이 가장 쎈 삼성생명이 구심점이 돼 플랫폼이 구축될 가능성이 큰데, 삼성생명은 보험사 특유의 보수적 문화가 강한 곳”이라며 “수직적인 소통에 익숙한 삼성생명이 디지털 금융을 좌지우지 한다면 다른 계열사들이 결국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 사간 득실도 따져봐야할 문제다. 지주사인 삼성생명이나 화재보험인 삼성화재는 자산규모는 크지만, 실제 이용자수는 삼성카드에 비할 바가 못된다. 카드와 증권이 생명과 화재 좋은 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 정준섭 연구원은 “각 MAU를 보면 카드가 압도적이고 그 다음이 증권”이라며 “생명과 화재는 앱 이용자가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8월 모바일인덱스 조사 결과를 보면 안드로이드와 iOS를 합친 MAU는 삼성화재가 125만명, 삼성생명은 60~70만명 수준인 반면, 같은 기간 삼성카드는 620만명에 달했다. 삼성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MAU는 200만명 정도로 집계된다.


금융권의 최대 화두인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이 힘들다는 점도 난관이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거래 내역뿐 아니라 주식, 펀드, 신용카드 내역, 통신비 등을 조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 데이터 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디지털화는 무용지물이 된다. 삼성생명은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아 신사업 진출에 제동이 걸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