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기, 저렴한 치료제로 전세계 주목을 받은 항우울제 ‘플루복사민’에 대한 제약업계 관심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화이자와 MSD(머크앤컴퍼니)가 개발한 진정한 코로나 치료제의 출연으로 잠시 잊혀졌지만, 이들 의약품들이 고가인데다 처방 요건 마저 까다롭다는 점 때문에 대중적이지 못하단 지적이 잇따르면서 플루복사민에 대한 연구가 또 한 번 활발히 진행되는 분위기다.

 2021년까지 JW중외제약이 판매한 플루복사민말레이트 성분 항우울제 ‘듀미록스정’ / JW중외제약
2021년까지 JW중외제약이 판매한 플루복사민말레이트 성분 항우울제 ‘듀미록스정’ / JW중외제약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북미 지역의 한 연구팀이 2020년에 이어 인류가 오랜기간 항우울제로 사용한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환자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캐나다 맥길대학교 건강센터 연구소(RI-MUHC)와 미국 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 공동 연구팀은 새로운 연구에서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감염 후 환자들의 입원을 예방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맥길 대학교는 코로나 초기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임상에 참여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기관 중 하나로, 코로나가 세계로 확산한 2020년부터 플루복사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바 있다.

2020년 11월 ‘미국의사협회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게재된 내용을 보면 미국 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은 경증 또는 중등도 코로나19 환자 1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환자의 중증 진행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또 플루복사민이 코로나19 환자 입원률을 32% 가량 낮춘다고 주장했다.

플루복사민은 우울증이나 강박증 치료를 위한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다. 1971년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후 다국적 제약사 애보트가 해당 성분을 함유한 항우울제 ‘루복스’를 출시하며 대중에 본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플루복사민은 주요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불안장애의 치료를 위해 널리 처방되고 있다. 플루복사민은 강력한 세로토닌 재흡수에 대해 강력한 선택적 억제작용을 통해 항우울 효과를 낸다는 기전으로 유명하다.

플루복사민은 항우울 치료뿐 아니라 체내 염증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인 시그마-1 수용체를 활성화해 염증 발생을 줄이는 효과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JW중외제약이 2021년까지 ‘듀미록스’라는 제품명 판매하다가 올해부터 한국애보트로 판권이 넘어간 상태다.

올해 연구팀은 폐 손상을 일으키고 환자의 입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염증 발생을 줄이는데 플루복사민이 효과있다는 동물실험을 주목했다. 연구팀은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브라질에서 코로나19 환자 21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무작위 위약대조 임상시험 3건에 대한 메타분석을 시행했다. 세 임상시험 참가자들 모두 진단 후 7일 이내에 증상이 나타났다.

분석 결과 항우울제 플루복사민이 성인 코로나19 외래 환자의 입원 위험을 유의미하게 감소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94.1%~98.6%).

특히 검토된 임상시험 중 하나(STOP COVID1)는 플루복사민이 폐의 염증을 줄였다는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환자 15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해당 임상시험에서 플루복사민이 환자들의 호흡곤란 또는 입원 후 동반하는 저산소혈증을 억제해 중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예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감염학회는 일부 연구에서 치료효과 이외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플루복사민을 코로나19 외래환자에 권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플루복사민은 졸음, 오심, 구토, 복통, 진전, 동성 서맥, 경미한 항콜린성 증상 등을 유발시키며, 심혈관계 독성으로 기립성 저혈압, 동성 서맥을 유발한다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이밖에 간 기능 이상으로 효소 수치가 상승하고, 경미한 저혈당 및 조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 위험이 증가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1달러 수준의 플루복사민이 저개발 국가 등 백신·치료제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역에 유용하게 사용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식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된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1회분에 530달러(65만원) 수준이며, MSD의 라게브리오는 700달러(86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팍스로비드는 중증 환자에 높은 효능에 비해 만성질환자들이 복용하는 약물과 상충돼 처방이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하고, 라게브리오는 가격에 비해 30% 수준의 효과만 발휘한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무작위 임상시험을 통해 용량을 평가하고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을 받은 환자에 대한 효과를 조사 중이다"며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코로나19 항체치료제나 항바이러스제에 접근이 어려운 고위험 환자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가 치료제로 주목받던 ‘덱사메타손(dexamethasone)’보다 플루복사민이 더 효과적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저렴한 스테로이드제 중 하나인 덱사메타손 역시 지난해까지 수많은 연구팀 및 전문학회를 통해 코로나19 입원 치료 환자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혈당 수치를 증가시켜 당뇨병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정식 사용이 자제되기도 했다.

다니엘 그리핀 뉴욕 콜롬비아대학교 바이러스 박사는 "코로나19 초기의 고위험 환자에게 스테로이드와 달리 면역체계의 항바이러스 작용을 억제하지 않는 플루복사민이 덱사메타손(dexamethasone)과 같은 스테로이드제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러스 침투시 우리 몸 항체들이 과민반응을 보여 발생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을 플루복사민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 관계자는 "어떤 질병이든 치료제 선택 옵션은 많을 수록 좋고, 치료 기대 대비 50% 효과가 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같이 수많은 환자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 처럼 높은 백신 접종률 덕에 환자 입원률이 상당히 많이 떨어진 나라에서는 사용될 이유가 적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