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은 ‘국가 교통 및 자동차 안전법(National Traffic and Motor Vehicle Safety Act)’에 서명한다. 자동차의 설계 및 작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불합리한 사고에 대해서는 제조사가 대중을 보호하는 게 맞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고속도로 설계에 따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속도로 안전법 역시 이어 통과됐다.

언뜻 보면 대통령의 결단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이 법 통과 뒤에는 랄프 네이더(Ralph Nader)라는 인권 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였는데 학교를 오가며 무시무시한 충돌사고를 자주 목격하자 로스쿨에서 자동차 안전 관련 법을 연구하기로 한다.

그는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책을 출판하여 "자동차 제조사들이 안전 대신 마력이나 외관 등에만 힘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GM 쉐보레 콜베어(Corvair)의 불안정성에 집중했던 그를 GM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미행하기도 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힘입어 안전벨트, 안전유리, 충격 흡수 운전대 등의 설치가 의무화됐다. 수많은 소송과 제품 리콜이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지나치게 관료적인 명령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그러나 이 법은 미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계기가 됐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크립토 산업을 보며 이때의 논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금리가 오르고 가상자산가 폭락하면서 셀시우스와 쓰리애로우캐피탈 등, 가상자산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은 파산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기, 조작 이야기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멋진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쌩쌩 달리는 것에 더해 안전을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가상자산로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 외에 무언가 더 필요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크립토 업계에서는 우리 생태계를 알지도 못하면서 관료적 규제에만 혈안이 됐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다만 그 때와 다른 것은 랄프 네이더 같은 한 명의 영웅이 논의를 이끌기보다 여기저기서 다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저런 부작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규제 당국이 직접 나서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SEC(증권거래위원회)와 CFTC(상품거래위원회)가 가상 자산 규제의 주도권을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끊임없이 크립토 산업에 ‘증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외친다. 반면 CFTC는 SEC가 다수의 가상 자산에 대해 소송을 통해 증권으로 분류하려는 것을 두고 ‘권위를 이용한 강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CFTC가 혁신과 성장에 방점을 둔 규제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CFTC가 규제 당국이 되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혁신과 부작용이 혼재한 시장, 첨예하게 갈리는 이해관계, 그리고 이를 해결해 보겠다는 사람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60년전 상황이 오늘날 상황에도 대입되는 것을 보면 어느 시대에나 새로운 물결 앞에서는 진통과 논란이 따른다.

이 대목에서 당시 법을 통과시킨 린든 존슨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 본다. 그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지 뿐 아니라 어떻게 돈을 쓸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어디를 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논의가 오랜 시간 걸린다 해도 어디를 향할 것인지만 명확히 한다면 절반 이상의 수확일 듯하다.

랄프 네이더는 60년전 그 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로 여론을 꼽았다. 자신의 차가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는지 이해한 여론이 법 통과의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 강연에서 "세상은 여전히 우리가 적용하지 않은 해결법으로 가득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 "그 틈을 메우는 것은 근시안적 방치 대신 선견지명으로 공공의 이익을 진보시키는 우리의 일"이라도고 덧붙였다.

투자자에게는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닌 ‘우리 투자가 얼마나 더 안전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공부와 관심이, 규제 당국에는 투자자와 업계 목소리를 듣는 경청이, 업계는 우리만 잘 되면 그만이 아닌 생태계 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60년 전을 돌이켜보며 투자가 안전해져야 산업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지은 작가 sjesje1004@gmail.com
서강대 경영학 학사, 국제통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0년 이상 경제 방송 진행자 및 기자로 활동했다. 유튜브 ‘신지은의 경제백과’를 운영 중이며 저서로 ‘누워서 과학 먹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