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2.0의 진짜 의미, ‘사람'을 다시 소환하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더 머지(The Merge)’ 업데이트가 지난 15일 성공적으로 끝났다. 더 머지란 이더리움의 합의 알고리즘을 작업증명(PoW) 방식에서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2014년부터 꿈꿔오던 ‘이더리움 2.0’이 현실화 된 것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이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니 일반 매체도 관련 소식을 많이 다뤘다. 대부분의 기사가 새 업데이트의 효능과, 그로 인해 이더리움이 얼마나 더 경제적 가치가 높은 플랫폼이 되느냐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실제 바뀌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다량의 전기를 경쟁적으로 사용하는 작업증명 방식에서 지분증명 방식으로 넘어오면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줄었다. 부테린은 업데이트 이후 "역사상 가장 큰 탈탄소화 노력 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크립토탄소연구소(CCRI)의 보고서에 따르면 머지 업데이트 이후 에너지 사용량이 99.988% 줄었다.

고질적 문제였던 느린 속도와 높은 수수료도 곧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더리움 진영에서는 오는 2023년 ‘더 서지(The Surge)’ 업데이트를 예정하고 있다. 더 서지에서는 샤딩과 롤업 등 네트워크의 확장성을 높여주는 레이어2 솔루션들이 본격 도입된다. 샤딩은 이더리움의 데이터베이스를 작은 조각으로 분할해 처리하는 기술이고, 롤업은 외부에서 트랜잭션을 처리한 후, 그 데이터를 이더리움에 게시하는 기술을 말한다. 더 머지 업데이트는 이런 변화의 기초 단계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크립토 업계를 지켜본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다시 사람이 소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시대를 열었던 비트코인은 네트워크의 무신뢰성(trustless)을 추구했다. 신뢰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인간의 신뢰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수준으로 짜여져 있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로 이런 상태를 구현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도입된 게 작업증명 방식이다. 이 방식은 컴퓨터로도 계산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장 빨리 풀어내는 이에게 블록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누구나 문제풀이에 참여할 수 있고,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다.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반면 이번에 도입된 지분증명 방식은 얼마나 많은 코인을 스테이킹(staking)했느냐에 따라 더 많은 블록 생성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 즉, 돈이 많은 몇몇이 쉽게 플랫폼을 장악할 수 있다. 실제 지난 15일 머지 업데이트 직후, 몇 시간 동안 전체 네트워크 블록의 40% 이상이 스테이킹 서비스 기업인 리도 파이낸스(LIDO Finance)와 코인베이스(Coinbase)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지분을 각각 27.5%, 14.5%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런 소수 고래들이 담합이나 공모로 그동안 이더리움이 쌓아왔던 운영 방침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프로토콜 운영을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면? 사실 이런 문제들은 앞서 지분증명 혹은 그와 유사한 합의구조를 도입한 크립토 프로젝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부테린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9월 말 발간 예정인 ‘지분증명(Proof of Stake)’에도 관련 관점들이 소개돼 있다. 그는 2017년 12월에 썼던 ‘공모에 대하여'라는 글에서는 "금전적 토큰 보상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시스템에서는 금권정치나 뇌물 수수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8월 작성한 ‘토큰 투표 거버넌스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글에서는 "탈중앙화 방식의 코인 기반 거버넌스가 네트워크의 중요 결정을 내리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모두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한 이더리움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큰 그림에서 보면 이더리움은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속도와 수수료 문제를 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에 좀 더 노출됐다. 부테린이 제기하는 해답 중 하나는 사용자 커뮤니티다. 그는 이더리움의 철학에 위배하는 결정이 이뤄지거나 특정 소수가 투표권을 매수, 플랫폼을 휘두르면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이더리움을 복사, 새로운 코인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블록체인 플랫폼에 야기하는 위험을 다른 사람이 막아내는 격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가상자산 플랫폼 ‘스팀(Steam)’ 커뮤니티는 스팀을 인수한 트론(TRON) 창립자 저스틴 선의 횡포에 반대, 하이브(HIVE)라는 이름의 새로운 코인을 만든 바 있다.

나는 이번 업데이트를 단순한 합의구조 방식의 변환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믿지 못해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다시 인간을 주요한 변수로서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이 시도는 성공할까. 세간에서 사람들이 뜬금없이 던지곤 하는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이 부분에서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동환 블리츠랩스 이사 paul.kim@blitz-labs.xy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