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3년 10월~12월호 표지 이미지 / IT조선 DB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3년 10월~12월호 표지 이미지 / IT조선 DB
‘그때 그 시절 IT’는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이하 마소)’의 기사를 살펴보고 IT 환경의 빠른 변화를 짚어보는 코너입니다. 마소는 1983년 세상에 등장해 IT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IT조선은 브랜드를 인수해 2017년부터 계간지로 발행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IT’ 코너는 매주 주말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2005년, 이동하면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차 안에서 단말기(휴대폰, PMP, 네비게이션, DMB 전용 수신기 등) 하나만 있으면 ‘자기만의 텔레비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05년 12월부터 방송사 프로그램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지상파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DMB는 유럽의 디지털 라디오 방송 규격 DAB를 응용해 동영상 전송이 가능하도록 국내에서 개발한 모바일 방송 규격입니다.

당시 개인 단말기로 드라마, 스포츠, 예능 등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시대가 이렇게 변하는구나’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화질은 QVGA(320X240) 수준에 불과했지만 당시 지원하는 단말기 역시 해상도가 낮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은 못느꼈죠.

DMB 단말기 / ETRI
DMB 단말기 / ETRI
이듬 해인 2006년이 되면서부터 DMB 이용률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구매할 때도 DMB 기능이 꼭 들어간 제품을 선택했고 그 바람에 지상파 DMB폰이 일부 대리점에서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자기만의 텔레비전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마소 매거진에서는 그러한 소망을 ‘개인화’라고 했습니다. DMB가 서비스 되기도 전인 2003년 10월, 11월, 12월호에는 ‘DMB 분석’이 연재 특집으로 다뤄졌는데요.

특집 기사에서는 "DMB는 과거 고정 텔레비전이 가지고 있던 집단적인 시청 행위를 약화시키고 개인적 이용 행위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DMB의 이러한 개인시청의 특징을 시청행위의 개인화(individuality)로 규정한다"고 정의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3년 12월호에 실린 ‘DMB 분석’ 특집 기사 이미지 / IT조선 DB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3년 12월호에 실린 ‘DMB 분석’ 특집 기사 이미지 / IT조선 DB
그랬던 DMB를 우리는 왜 이용하지 않게 된 걸까요. 무엇보다 더 재밌는 것들이 나와서였을 겁니다. 2000년 후반 들어 스마트폰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영상 기반의 콘텐츠 플랫폼에 푹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12월 막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정부(정보통신부)에서도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재방영만으로는 DMB 콘텐츠 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초기에는 기존 콘텐츠에 의존하되, 점차 DMB 특성에 부합하는 핵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 보급하는 2단계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거기에 앞서 언급했던 화질 부분도 DMB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QVGA(320X240)급 휴대폰에서는 DMB 해상도가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HD(1280X720)급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면서 DMB의 화질은 픽셀 조각이 보일 만큼 안좋았습니다. 결국 사용률도 감소하고 채널 수도 점차 줄어들게 되면서 이제는 유명무실한 서비스가 됐습니다.

삼성전자가 2006년 출시한 ‘슬림 가로보기 지상파 DMB폰’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2006년 출시한 ‘슬림 가로보기 지상파 DMB폰’ / 삼성전자
그러고보면 DMB는 사람들의 소망에 의해 발전했고 사람들의 갈망에 의해 사장됐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자기만의 텔레비전’을 갖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는데 좀더 고화질에, 좀더 재밌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고화질로 보고 싶은 갈망은 다른 데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죠. 거기에 DMB가 들어갈 틈은 조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거진에서 다룬 3편의 연재는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최고의 기술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때는 지난 것 같다. DMB는 최고의 기술들로 무장하지 않았다. 단지 신세대들, 즉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에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