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하드웨어 성능이 높아지는 이유는 필요한 작업을 더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신 하드웨어라도 소프트웨어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그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최적화 여부에 따라 성능에 제법 영향을 받는다. 이 덕분에 ‘최신 하드웨어는 최신 환경에서’ 최신 업데이트를 적용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사용 방법이다.
물론 PC를 사용하면서 언제나 최선의 조합이 맞춰지지는 않는다. 특히 게이밍 PC에서 그래픽 성능에는 그래픽카드 드라이버의 완성도, 게임과의 ‘궁합’ 측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픽카드와 게임과의 궁합 측면에서, 하드웨어가 추구하는 시대적 방향과 게임이 사용한 기술적 특징간 방향성이 상이하면 제대로 된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 양 쪽의 간극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드라이버’를 통한 최적화다.
인텔의 ‘아크’ 시리즈 그래픽카드는 다이렉트X 12 얼티밋(DirectX 12 Ultimate) 등 최신 세대 기술을 지원하는 하드웨어를 갖추고, 소프트웨어 또한 최신 게이밍 환경에 중점을 둔 바 있다. 이에 비교적 출시된 지 오래 된 게임과의 성능과 호환성이 경쟁 제품 대비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인텔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특히 2월 1일 선보인 4091 드라이버에서는 주요 e스포츠 종목 등에서 크게 향상된 성능을 선보인 바 있다.
PC에서 장치의 드라이버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특히 그래픽카드에서 게임 등의 소프트웨어는 다이렉트X(DirectX)나 오픈GL(OpenGL), 벌칸(Vulcan) 등의 표준 API 규격을 맞추어 작성되고, 하드웨어의 드라이버는 이 표준 규격 기반 워크로드를 하드웨어에 적합한 방식으로 전달해 결과를 낸다. 이런 과정에서 드라이버가 표준 API 규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드웨어에 전달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용자가 체감하는 성능이 달라진다.
물론 이 ‘효율’이 쉽지는 않고 많은 문제가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표준 API의 파편화에 따라 하드웨어의 주력 지원 API와의 간극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PC 게임이 사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이렉트X(DirectX)’는 그 역사를 길게 보면 윈도95 시절의 2.0부터 현재의 12 얼티밋에 이르고, 당장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9.0부터 12 얼티밋까지 몇 개의 버전이 있다. 기간으로 따지면 대략 20년쯤 된다.
다이렉트X 기술은 버전별로 다른 기술적 특징을 갖는데 그 중에서도 버전간 변화가 컸던 시기 중 하나가 9.0에서 10으로 넘어가던 시절이다. 이 시절 GPU 또한 큰 변화를 맞았는데, 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이 통합 쉐이더와 쿠다(CUDA)를 처음 선보인 엔비디아의 ‘지포스 8 시리즈’다. 다이렉트X 9 이전과 10 이후가 워낙 큰 차이가 있다 보니, 최신 하드웨어와 오래된 API 간의 성능 최적화 문제는 업계 전체의 지속적인 과제로 남았다.
또한 게임들이 당시의 기술적 한계 안에서 표현력을 극대화하고자 시도했던 각종 ‘최적화’가 시간이 지나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당대의 AAA급 게임들에는 주요 GPU 제조사의 지원이 붙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실행할 때 GPU 제조사의 로고가 뜨는 게 이런 부분의 일환이다. 문제는 이런 최적화가 특정 제조사의 특정 세대 GPU에 최적화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회사의 GPU를 사용하는 경우 성능과 호환성 문제가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당시에는 지원했지만 지금은 지원이 끊긴 기술을 사용해서 추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인텔 또한 지금까지 수십 년간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을 위한 드라이버를 제공하면서 이에 대한 어려움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아크 그래픽카드를 준비하면서 인텔은 아크의 하드웨어와 드라이버가 현재의 ‘다이렉트X 12’ 세대 지원에 집중한다고 소개했던 바 있다. 이는 당장 최신 게임을 즐기기 위한 성능이 필요한 사용자들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수십 년 전의 오래된 게임을 즐기자고 최신 PC로 업그레이드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에, 인텔은 아크 그래픽카드에서 이제는 ‘레거시’로 분류될 만한 ‘다이렉트X 9’ 지원을 직접 지원이 아닌, 다이렉트X 9의 주요 기능을 다이렉트X 12의 기능으로 변환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이런 간접 지원 방식은 직접 지원 대비 성능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구현에 대한 부담이 적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금까지 십수 년간 수십 배 높아진 하드웨어 성능에 힘입어, 성능 손실이 크더라도 절대적 성능 수준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만 하다는 계산도 있었다.
이에 인텔이 처음 ‘아크 A7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내놓았을 때, 다이렉트X 11~12 정도의 최신 게임에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보였다. 그리고 다이렉트X 9~10 기반의 오래된 게임들에서는 경쟁 제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았지만, 그래도 절대적 기준으로는 제법 ‘쓸 만한’ 수준은 되었다. 사실 다이렉트X 9~10 기반 게임은 이제 나온 지 10년도 훌쩍 넘어 현재의 윈도11 환경에서는 실행에서부터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도 이제 대세는 최소한 다이렉트X 11 기반이며, 10년이 훌쩍 넘은 서비스들에서도 기술 전환이 시도되는 경우가 있다.
인텔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새 드라이버에서는 다이렉트X 9 기반 주요 게임의 성능이 크게는 75%까지도 올랐다. 성능 향상 폭은 게임에 따라서 다른데, 특히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S:GO)’의 성능 향상이 눈에 띈다. e스포츠 종목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2’나 ‘리그 오브 레전드’, 국내에서도 제법 인기가 높은 ‘로스트 아크’ 등이 큰 성능 향상의 수혜를 얻었다.
사실 다이렉트X 9 기반 게임들은 이제 출시된 지 길게는 20년 가까이 지난 게임이어서 패키지 게임의 경우 현재의 윈도11 기반에서 실행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워낙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최적화 없이도 절대 성능 측면에서 초당 100~200프레임 정도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인텔이 소개한 주요 게임들은 아직 ‘서비스 중인’ 게임들 위주고, 특히 ‘e스포츠’ 종목들에서는 성능과 반응성 측면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에 이 부분에 대해 대폭 성능을 향상시킨 드라이버로 매력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텔은 아크 그래픽카드 출시 이후 공식과 배타를 포함해 몇 번의 새로운 드라이버를 제공했고, 주요 신작 게임들의 출시에 맞춰 이에 최적화된 드라이버를 제공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드라이버 발표 릴리즈 노트를 살펴보면 다양한 게임들에서 성능과 호환성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크 그래픽카드에 대한 인텔의 의지는 여전히 높으며, 추후 새로운 아크 시리즈나 프로세서 내장 그래픽으로의 활용 확장 등을 감안하면, 드라이버 지원 부분은 앞으로도 활발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 주요 e스포츠 종목들에서 큰 성능 향상 선보여
일단 다이렉트X 11, 12 기반 게임과 성능 테스트에서는 두 버전간 차이가 거의 없다. 3DMark의 다이렉트X 11 기반 테스트인 ‘파이어 스트라이크’나 다이렉트X 12 기반 ‘타임 스파이’ 모두, 두 드라이버 간 성능 차이는 오차 범위 안이다. 이는 인텔이 아크 그래픽카드를 처음 선보일 때부터 최신 API 기반 게이밍 성능을 중요하게 보고 최적화한 결과다. 3DMark 테스트 결과에서 아크 A770의 성능은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수준에 올라 있다.
다이렉트X 12 기반 게이밍 그래픽카드의 성능 확인에 많이 사용되는 ‘쉐도우 오브 더 툼레이더’와 ‘히트맨 3’의 다이렉트X 12 모드 성능 또한 큰 차이는 없다. 히트맨 3는 새로운 드라이버에서 ‘Dubai’ 씬의 성능이 3% 정도 높아진 것이 눈에 띈다. 사실 인텔 아크 그래픽카드는 현재 다이렉트X 12 기반의 최신, 유명 게임들에서 경쟁 제품에 뒤지지 않는 충분히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드라이버 업데이트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게임으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CS:GO)’가 꼽힌다. 이 게임은 사실 20년 전의 ‘하프 라이프’ 시절 엔진을 기반으로 아직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즐기고 있고, e스포츠 리그의 주요 종목으로로 운영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인텔 아크는 플레이 시 평균 프레임은 232프레임에서 348프레임으로 50% 향상, 그리고 1% 최저 프레임은 41프레임에서 140프레임으로 3.4배까지 높였다.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기존 드라이버 대비 화면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워진 것이 체감된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고, 여전히 활발히 서비스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2’ 또한 제법 큰 성능 향상이 있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2의 경우 교전 등 복잡한 상황에서 그 성능 향상 폭이 컸다. 게임 전체의 평균 프레임에서는 약 10% 수준의 차이지만, 게임 후반의 교전 상황을 위주로 봤을 때는 20% 이상 성능 차이를 보였다. 물론 기존 드라이버에서도 최소 초당 100프레임 급을 보여 주었지만, 새로운 드라이버가 제공하는 성능 향상은 실제 게임 후반에서 더 매끄러운 조작으로 플레이어의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메트로 2033’도 등장 당시 성능과 호환성 등에서 즐기기 어려웠던 게임 중 하나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에서는 ‘호환성’ 문제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이 게임에서도 새로운 드라이버에서의 성능 향상이 눈에 띈다. 특히 다이렉트X 9 모드에서는 17% 가량 성능이 향상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 게임은 다이렉트X 11 모드에서 더 많은 특수효과를 모두 포함하고도 다이렉트X 9 모드에 손색없는 성능을 보이는 만큼, 가능하다면 최신 API 기반 환경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배틀그라운드(PUBG: BATTLEGROUNDS)’ 또한 지금까지 이뤄졌던 몇 번의 드라이버 업데이트에 따른 성능 향상의 수혜를 누렸다. 배틀그라운드는 다이렉트X 11 기반의 울트라 옵션 설정에서 아크 그래픽카드의 드라이버 업데이트로 11% 정도 성능이 높아졌다. 배틀그라운드는 국내에서도 많이 즐기는 게임인 만큼, 배틀그라운드에서의 성능 향상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인텔이 2023년에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의 수순을 밟고 있는 ‘다이렉트X 9’ 성능을 높인 드라이버를 내놓은 이유는 일부 게임에서는 아직 ‘다이렉트X 9’ 활용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e스포츠’ 종목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거나, 아직 대규모 온라인 라이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는 최신 운영체제에서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도록 지속적인 패치와 지원이 제공된다. 사실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고 인텔 또한 이렇게 생존한 소수의 게임 위주의 최적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텔은 최근 아크 A750 리미티드 에디션 그래픽카드의 가격을 249달러(약 30만원) 정도로 낮췄다. 시장에서의 경쟁 모델인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3060과 비교하면 더 낮은 가격대에 전반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높은 ‘다이렉트X 12’ 성능, 약점을 줄인 ‘다이렉트X 9’ 성능으로 게이밍에서 매력은 더 높아졌다. 또한 AV1 하드웨어 인코더 등 영상 처리 관련 기술과 성능은 더 우위에 있다. 아직 드라이버에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인텔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인 만큼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제법 ‘성장’을 기대할 만 하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