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응급수술을 못 받은 간호사가 사망한데 이어 올해 10대 청소년이 응급실 전문의 부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가 연이은 응급의료체계 개선책을 내놓고 의료취약지에 전문인력을 배치하겠다는 개선 방향을 제시했지만, 의료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체계 마련과 현실적 보안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있다. / 뉴스1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있다. / 뉴스1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각종 학회와 정치권이 정부가 응급의료체계 개선안을 내놓았음에도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며, 실효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연이어 비판하고 있다.

우선 대한뇌졸중학회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응급의료이송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119구급대와 전문 치료기관의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며,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고 환자의 최종 이송을 책임질 수 있는 관제센터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전문진료과와 연계되지 않아 치료받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119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차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난달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지만 이는 제3차 응급의료기본계획(2017-2022)과 90%가 유사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119에서 치료를 하는 전문 진료과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체계와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관제 센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구의 한 건물에서 떨어진 10대가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진 사고가 응급환자의 상태와 병상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적인 시스템 부실로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당국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김성헌 대한뇌졸중학회 병원전단계위원장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포함해 여러 응급의료센터가 병실과 의료진 부족 문제로 24시간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힘든 상황에서 경증 환자로 넘치는 응급의료센터 응급실에서 중증 환자 진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 진료를 분리해 중증응급의료센터는 필수 중증 환자의 최종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가 정립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응급신경학 전문의 기반의 1차 진단 및 원스탑(One-stop) 진단 치료가 가능해야 하고,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환자의 진단·이송·치료관리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재근, 정춘숙, 신현영 국회의원 주최로 열린 ‘MZ세대 보건의료인력근무환경개선’에서는 전공의의 과도한 업무 시간과 의료 인력 쏠림 현상이 필수·응급의료 결핍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2022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턴 4명 중 3명은 초과 근무를 섰고, 1년 차 전공의의 평균 주당 근무 시간은 90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전공의 근로 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됐던 점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24시간 내 최소 11시간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있지만, 국내 전공의 66.8%가 주 1회 이상 24시간 초과 연속 근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전공의 사망 원인 중 하나로 36시간까지 과도한 연속 근무를 강행했다는 점이 주요원인으로 꼽히면서, 최근 산업재해로까지 인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연속근무 24시간 제한 ▲주 80시간 근로, 단계적 감축 ▲불법 관행(근로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눈속임, 공정하지 않은 수련계약 등) 근절 ▲시급 1만원 수준 급여 인상과 포괄임금제 폐지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겠다는 트렌드가 생기고 있다"며 "인기과 쏠림, 필수 의료·공공 의료 문제를 감안했을 때 전공의 근로조건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업무 쏠림현상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전공의 주 80시간 이상 초과근무가 많은 과로는 흉부외과,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인턴 순이었다. 환자의 상급병원 쏠림 현상도 부각됐다. 실제 병원별 주 80시간 초과근무 비율을 보면 소형병원이 36%였던 것에 반해 대형병원은 60.3%로 기록됐다.

김상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감사는 "전공의 업무 과다가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필수 중증 의료과 인력 부족 때문이다"며 "의료 수가를 늘려 채용을 독려하고, 의대 졸업 1년간 인턴 과정 수련을 하거나 필수의료 수련 후 개원이 가능하게 해 병원 수를 늘려 나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에 복지부도 의료계를 만나 필수의료 및 의사인력 확충에 대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정책과를 정부의 공식 답변 창구로 두고 의료계의 우려를 적극 수용하는 동시에 현실성있는 정책마련을 추진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부터 개원의까지 의료계의 다양한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소통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필수의료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개선책을 모색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