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한시적 허용을 통해 운영된 ‘비대면 진료’가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생사기로에 놓인 가운데, 정부가 비대면 진료 확대에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일정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대표가 동행하는가 하면, 복지부가 비대면진료 제도화 추진을 공헌하면서 일각에서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머지않아 본궤도에 오를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강기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강기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달 중단 위기에 놓인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정부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경제사절단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가 포함되면서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까지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에서 ‘경계’ 단계로 하향될 예정인 내달을 기점으로 존폐 위기에 놓인 상태다. 그러나 최근 필수의료 공백과 응급실 전문의 부족 등이 연이 터지며 비대면 진료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 대통령의 방미사절단에 장 대표가 포함된 점은 업계 측면에서 고무적인 소식이다. 닥터나우는 비대면진료 업계의 법제화를 위해 뭉친 원격의료분야산업협의회를 이끄는 대표 기업이기도 하다.

특히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때부터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구정과제로 내세우며 지속적인 관심을 내비친 바 있다. 업계는 윤 대통령이 이처럼 비대면 진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로 미래 보건산업을 이끌 차세대 기술이라는 점과 동시에 지난 팬데믹 시기에 비대면 진료의 성장 가능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비대면 진료는 2020년 2월 24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1379만명을 대상으로 3661만건의 사용 횟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재택치료는 2925만건, 나머지 736만건은 만성·경증 질환 진료다. 총이용자는 1379만명, 진료비는 환자 본인 부담금을 포함해 1조5893억원에 달했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비대면 진료가 처음 허용된 2020년 만성·경증 질환 환자 기준 이용자 수는 84만명으로, 진료비 214억을 기록했다. 이후 2021년에는 111만명이 이용했으며 지난해 205만명이 사용, 진료비는 351억원에서 662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글로벌 비대면진료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을 18.8%로 전망했다. 2030년 전 세계 비대면진료 시장은 224억8000만달러(30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비대면 진료는 현행 의료법에 철저히 막혀있다.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는 의료업은 반드시 의료기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의사가 비대면으로 환자를 진단할 수 없게 표기돼 있다.

또한 비대면 진료와 직결된 의약품 배송 서비스 역시 약사법 제50조 제1항에 표기된 ‘약국 개설자와 의약품 판매업자는 약국 및 허가된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팔 수 없다’는 조항에 의해 막혀있다. 즉, 환자의 비대면 진료는 모든 행위가 철저히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에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비대면 진료 지지 국민 11만2564명의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박재욱 코스포 의장은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10만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것은 많은 국민에게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하다는 방증이다"며 "지난 3년간 1379만 명의 국민의 건강을 지킨 비대면 진료의 효용을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산업계의 요구가 의료계 입장과 대치됨은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첨예한 주장이 나오면서, 정식 입법까지는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산업계는 초진 허용과 더불어 상급병원 비대면 진료 역시 허가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월 대한의사협회와 개최한 제2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대면 진료 원칙 ▲보조적 수단으로서 비대면진료 ▲재진환자·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비대면진료 전담 의료기관 금지 등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3월에는 복지부가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통해 재진환자,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 및 도서·벽지·재외국민·감염병 환자 등 의료 취약지와 사각지대 환자에 우선 적용하겠다고 발표해 산업계는 강함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산업계는 이대로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스타트업 30곳 중 24곳이 고사 위기에 직면할 것이며, 대부분의 일반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 앱을 사용할 이유를 못 느껴 산업이 자연스럽게 사장될 것이라 우려한 상태다.

이 같은 대립에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비대면진료 법제화에 대한 의료법 개정안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심사 기회를 획득하지 못하면서 계류가 결정됐다.

복지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당초 의약품 오남용과 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효적 방안이 나오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며 "더불어 최근 소아과 대란 현상을 이용한 비대면 진료 홍보에 대한 정치권 여론마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환자단체연합회 마저 비대면 진료 초진을 추진하는 플랫폼 업계에 유감을 드러내며 산업계의 구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환자단체연합회는 "비대면 초진은 대면 진료의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대면 진료의 기본 원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대면 진료와 비교할 때 오진 발생 가능성도 높다"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의료 영역에서 섣불리 허용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연장시행이 확정되면서 법제화가 당장 이뤄질 것이란 기대는 다소 낮아진 상황이다"면서도 "올바른 법제화를 통해 환자들에게 이로운 진료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업계의 주요 목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