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배당확대 자제 권고에도 불구, 금융지주들이 분기 배당 정례화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펴고 있다. 올 1분기 또 한 번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자 주주들과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올해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대규모 충당금을 쌓는 등 경영여건이 녹록치는 않다. 금융당국의 배당 확대 자제 요구가 단순한 군기잡기는 아니라는 방증이다. 실제 연체율도 슬금슬금 오르는 추세여서, 강화된 주주환원 정책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지 지켜봐야 할거란 목소리가 높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금융지주 회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 뉴스1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금융지주 회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 뉴스1
KB·신한·하나 1분기 배당금 평균 주당 545원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1분기 실적발표에 맞춰,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분기 배당을 정례화하고 나섰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그룹에 이어 하나금융지주도 올 1분기부터 처음으로 분기배당을 실시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정관을 개정해 향후 분기배당을 실시한다는 뜻을 밝혔다.

KB금융그룹은 1분기에 주당배당금 510원을 결의했다. KB금융은 "작년부터 분기배당을 정례화했으며 이번 주당배당금은 올해 초 실행한 자사주 매입·소각 효과로 전년 대비 소폭 확대했다"고 했다. KB금융은 지난해 1분기 첫 분기 배당을 50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2월에는 약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단행한 바 있다.

KB는 배당 확대에 대한 근거도 밝혔다. 손실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 13%를 달성하면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올 1분기 13.7%을 기록, 4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CET1 비율을 13% 상회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통해 1분기 배당금 525원을 결정했다. 지난 1일에는 75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에 따른 유통 주식수 증가(1748만2000주)에 대응하기 위해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결정했다.

하나금융지주는 17년간 중간배당을 이어오다, 이번 분기 최초로 분기배당을 도입, 주당 600원의 분기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분기배당 도입을 위해 정관을 개정했다. 이어 4월 말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결정·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인 분기배당 시기와 금액은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금융은 2분기 이후 이사회 논의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NH농협금융은 지난 2021년부터 중간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주당 배당금은 지난해 2242원, 2021년 2262원이다.

증권가 반응은 호의적이다. 이홍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중 실시될 것으로 예상됐던 분기 배당이 이번 분기부터 시작됐다"며 "주요 금융지주사들과 마찬가지로 배당 가시성이 제고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당국은 배당 자제 권고…건전성 제고 우선 과제

이러한 움직임은 은행의 공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는 당국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지속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 높다. 금감원은 올해 2월 업무계획 발표에서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 충당금 적립과 같은 자본건전성을 우선해 손실흡수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배당을 많이 하려면 위험가중자산 비중을 낮춰야하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중저신용자에 대한 신용공여가 불가능해지고, 중장기적으로 금융사 성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시민들이 입출금을 하는 모습. / 뉴스1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시민들이 입출금을 하는 모습. / 뉴스1
이미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표명한 금융지주사들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 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나온 각 지주사 재무총괄임원들의 코멘트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이태경 신한금융 재무총괄(CFO) 부사장은 "경제 불확실성으로 감독당국이 스트레스완충자본 적립과 글로벌 스트레스테스트 참여 등 선진국 수준의 건전성 확보를 주문하고 있어 규제 수준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자사주 매입·소각을 분기별로 계속 검토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종무 하나금융 재무총괄(CFO) 상무 역시 "분기배당 결정은 2분기와 3분기에도 유지할 계획"이라면서도 "자사주 매입은 분기·기말배당의 전체적 현금배당 성향을 감안한 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우리금융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은 자체적인 여력을 추가로 부여해 목표 CET1비율을 10.5%에서 12%로 제시하고 구간에 따라 총 주주환원율을 높여갈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금융지주사들은 일정 수준의 건전성 제고를 목표로 하되, 목표치를 달성하면 주주 환원책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배당 확대 외에 다양한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자사주 매입이 대표적.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스트레스완충자본이라는 신설 항목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목표 CET1 비율이 상향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예상했다.

그는 또 "우리금융의 경우, 올해 배당성향을 26.7%로 가정하면 현재 진행 중인 자사주 매입 1000억원을 포함한 주주환원율이 30.0%까지 올라간다"며 "배당수익률은 연말까지 합산 9.6%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