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가 흥행하면서 제휴사인 현대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애플페이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대했던 오픈페이가 주춤하면서다. 국내 간편 결제 시장이 ‘삼성페이 vs 애플페이’구조로 갈릴 거란 전망에 오픈페이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NFC 결제단말기로 애플페이를 이용 중인 고객 / 뉴스1
NFC 결제단말기로 애플페이를 이용 중인 고객 / 뉴스1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애플페이를 포함한 주요 5개 간편결제 서비스의 결제액은 12조372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 성장한 규모다. 애플페이를 제외한 4개사는 삼성페이 5조8186억원, 네이버파이낸셜 3조5976억원, 카카오페이 2조4278억원, NHN페이코 5060억원 등이다.

간편결제 시장은 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과 삼성 단말기를 활용한 삼성페이를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이에 지난 3월 8년 만에 국내에 애플페이가 출시되면서 삼성페이와 애플페이의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페이 시장이 삼성페이와 애플페이의 싸움으로 양분화 된데다 남은 시장마저 빅테크 계열 페이업체의 각축장이 되다보니 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던 ‘오픈페이’는 갈 길을 잃은 모양새다.

오픈페이는 한 카드사 결제앱으로 다른 회사 카드를 간편하게 등록해 사용·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 현재 신한·KB국민·하나·롯데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이 모두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애플페이 흥행 성공적 평가…애플페이 vs 삼성페이 구도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도입은 성공적이란 평가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현대카드의 신규 회원 수는 20만3000명으로 전 카드사 중 가장 많았다. 직전 달인 2월 신규 회원수가 11만 6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달 사이 애플페이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애플페이 출시 이후 한 달 간 신규 발급된 카드는 35만5000장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13만 8000장) 대비 156% 증가했다. 신규 회원 중 애플 기기 이용자 91%가 애플페이를 등록했다. 신규 등록 토큰수 역시 3주 만에 200만건을 돌파,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전망도 밝다. 조금 더 기다려 자신이 사용하는 카드로 애플페이를 이용하겠다는 고객도 다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소비자 설문 조사 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아이폰 이용자 중 42.8%가 다른 카드사 확대를 기다렸다가 애플페이를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른 카드사들도 오픈페이 시장 확대에 주력하기 보다는 애플페이와의 제휴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애플페이는 현재 결제 1건당 최대 0.15%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확장성을 염두에 두면 애플과 손잡는 게 맞지만, 수익성을 생각하면 섣불리 애플페이와의 제휴를 추진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애플페이 성공에 힘입어 최근 업계에선 삼성페이 유료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삼성페이는 애플페이와 동일한 0.15%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애플페이가 흥행한 만큼 이를 검토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면서도 "최근 카드사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0.15%의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이 카드사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 오픈페이 "어차피 안 될 시장"

카드사들이 연대해 내놓은 오픈페이는 어떨까. 애플페이를 견제할 강력한 서비스가 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업계 전문가 사이에선 ‘어차피 안 될 시장’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한 금융그룹의 카드 부문 관계자는 "하나의 카드사 앱으로 여러 카드를 등록해 사용하는 오픈 페이는 수익성보다는 고객의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서비스지만, 시장 전망은 좋지 않다"며 "편의성이나 주요 사용 연령층을 따져봤을 때, 이들이 굳이 금융사의 오픈 페이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 내부에서도 "애플페이에 대적할 만큼 큰 시장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삼성페이밖에 없다"는 자조가 나온다. 현금없는 시대에 이어, 카드없이 결제하는 시대도 머지 않았다. 현재 오픈페이 구조로는 이미 갤럭시, 아이폰 등으로 형성된 삼성페이·애플페이의 네트워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강력한 페이 회사들이 서로 연합하는 행보를 택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네이버페이가 삼성페이와 연합한 것이 그 예"라며 "앞으로 다른 페이 업계들도 서로 연합해 시장을 확장하는 형태로 가지 않으면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카드사에서는 핸드폰 단말기 사용자를 유입할 수 있을만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애플페이와 삼성페이 양분화 구조를 깨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픈페이 시장의 어두운 전망에 올 1분기 오픈페이 참여를 선언했던 BC카드, 우리카드도 그 기한을 연장했다. 양 사 모두 오픈페이를 도입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있으나 그 시기가 요원하다. BC카드 관계자는 "2분기 내로 오픈페이를 출시하는것을 목표로 현재 계속 개발 중이다"며 "2분기 내에 출시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오픈페이 출시가 2분기 내에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출시하기 위해 내부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정 기자 uzzon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