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제가 없는 혁신신약이지만 건강보험 적용 불가로 수억대 약가가 발생하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위암 치료제 ‘엔허투’의 급여 등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싼 약가에 대한 국민청원이 안건으로 채택되는 등 제약·의료계의 화제에 중심에선 엔허투가 올해 안에 모든 관문을 거쳐 합리적인 가격에 처방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HER2 양성 유방암·위암 치료제 ‘엔허투’. / 아스트라제네카
HER2 양성 유방암·위암 치료제 ‘엔허투’. / 아스트라제네카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달 한국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내놓은 신약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했다.

급여기준이 결정된 적응증은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사람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이전에 항 HER2 치료를 포함해 두 개 이상의 요법을 투여 받은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의 치료 등 두 가지다.

암질심은 약제의 임상적 타당성을 평가해 건보 급여 적용이 타당한지를 평가하는 첫 관문이다. 이번 암질심을 통과한 엔허투는 앞으로 경제성평가소위원회,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심의를 거쳐,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사를 받고 최종 급여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앞서 엔허투는 ‘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엔허투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특정 표적 단백질에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 ‘트라스트주맙’과 강력한 세포사멸 기능을 하는 ‘데룩스테칸’을 링커로 연결한 항체약물접합체(ADC)다.

엔허투가 각광받는 이유는 기존 치료제로 치료가 어려운 HER2 발현 유방암·위암 환자에게 사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HER2란 암 세포의 표면에 붙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를 보내는 수용체다.

유방암은 크게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양성, 삼중음성 유방암으로 구분한다. 이 중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이 유방암 전체 중 6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HER2 양성에 해당하는데, HER2 발현율이 낮아지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과 ‘퍼제타’ 등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은 HER2 저발현 유방암을 치료할 항암제가 없는 시점에서 엔허투는 의유방암 치료를 넘어 다양한 암종에 적응까지 가능해 항암제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엔허투는 항체의 표적에 대한 선택성과 약물의 사멸 활성을 이용, 약물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치료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임상적 유의성은 글로벌 임상시험에서도 입증됐다.

로슈의 1세대 ADC 캐싸일라(트라스투주맙 엠탄신)를 포함한 다양한 치료이력이 있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연구 결과, 1차 평가 변수인 평균 무진행 생존기간에서 엔허투 투약군이 17.8개월로, 대조군의 6.9개월과 비교해 2.5배 가량 더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평가변수인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엔허투 투약군이 39.2개월, 대조군은 26.5개월로 나타났다. 객관적 반응률은 엔허투 투약군이 69.7%, 대조군은 29.2%, 평균 반응지속기간은 각각 19.6개월과 8.3개월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획기적인 효과에도 그간 국내 환자들은 건보 급여가 적용되지 않은 엔허투를 연간 1~2억 사이의 약가로 처방받거나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해야만 했다.

환자단체는 엔허투 도입을 서둘러 달라며 국민청원에 요구, 엔허투는 2021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신속심사 의약품 지정을 받았고, 지난해 9월 급여가 적용되지 않은 채로 최종 허가를 획득했다.

이후 비싼 약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가 늘어나자 엔허투의 보험급여를 요구하는 청원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으며, 목표인원 5만명을 달성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올해 3월 암질심은 엔허투 급여 신설 안건을 논의했으나 재심 결정이 내려졌고, 제약사 측이 추가적인 재정분담안을 제출하면서 이달 암질심을 통과하게 됐다.

연이어 엔허투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의 약사위원회도 통과했다. 대형종합병원도 본격적인 처방에 앞서 약사위원회를 통해 엔허투의 코드를 부여하고 처방준비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엔허투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급여 적용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건보 적용 확대’에 따라 졸겐스마, 킴리아 등 초고가 치료제가 급여 적용됨에 이어 주요 혁신 신약들도 연달아 환자 부담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보고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허투는 환자 입장에서 혁신적인 치료제이지만 산업계 차원에서는 ADC 광풍을 불러일으킨 의미 있는 신약이다"며 "엔허투가 급여 적용돼 많은 환자들이 ADC를 경험하게 되면 그만큼 관련 산업도 활성화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