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가 뭐길래…‘대란’ 터진 그래픽카드 시장

입력 2017.06.10 00:53 | 수정 2017.06.10 06:00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이 유통되는 가상화폐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 시세는 2017년 5월 기준으로 1비트코인(1BTC)이 한때 400만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더리움 시세는 무려 30배나 증가하면서 단위금액당 8달러였던 것이 250달러선까지 급등했다.

가상화폐 가치가 급상승하자 2013년 이후 시들하던 '채굴(mining, 암호를 풀어 가상화폐를 생성하는 과정)' 시장도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채굴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그래픽카드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채굴용으로 인기가 높은 ‘AMD 라데온 RX 580’의 사파이어사 제품. / 사파이어 제공
하지만 가상화폐 채굴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PC용 그래픽카드시장이 떄 아닌 역풍을 맞고 있다. 전세계 가상화폐 사업장들이 채굴용 장비로 그래픽카드를 싹쓸이하며 그래픽카드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다수 가상화폐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계속 만들어지는 일종의 암호화 문제를 가장 빨리 푸는 사람에게 정해진 양의 가상화폐가 생성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연산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쓸수록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암호 화폐'라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컴퓨터에서 일반적인 연산은 CPU가 담당하지만, 가상화폐의 채굴에서 CPU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그래픽카드(GPU)다. 가상화폐 채굴에 필요한 '단순 연산' 성능은 오히려 CPU보다 빠르고 강력하다. 실제로 연산 가속용 그래픽카드는 이미 복잡한 연산이나 시뮬레이션, 인공지능 개발 등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연산 가속 전용 GPU는 가상화폐 채굴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비싸서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가격이 훨씬 저렴한 개인용 그래픽카드 여러 개를 동시에 연결해 연산 가속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질 대신 양으로 때우는 셈이다.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던 비트코인이 최근 다시 폭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게티이미지 제공
문제는 채굴 사업장들이 그래픽카드를 싹쓸이하면서 그래픽카드 시장에 '물량 대란'이 발생했으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일반 소비자와 제조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가상화폐 채굴 용도로 사용되는 그래픽카드는 정상가 기준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우수한 20만~30만원대의 메인스트림-퍼포먼스급 제품군이다. 업계에 따르면 채굴용으로 가장 인기 좋은(?) 'AMD 라데온 RX 580' 제품은 이미 2017년 5월 전후로 시중에서 씨가 말랐다.

현재 소비자들은 해당 그래픽카드 제품을 구매하려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 웃돈을 주고 사는 방법도 있지만 그마저도 물량이 없다. 조립 PC 시장도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가 없다보니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그래픽카드 유통/제조사도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채굴용으로 사용되는 그래픽카드는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혹사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장 가능성도 높다. 이는 제조사에게 AS 부담으로 돌아온다.

AMD 그래픽카드의 가장 큰 브랜드인 사파이어(SAPPHIRE)의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으로 인해 전세계 라데온 그래픽카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채굴 전용 B2B 제품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1060 제품 역시 가상화폐 채굴에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조텍의 지포스 GTX 1060 제품. / 조텍 제공
비슷한 등급의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 제품들도 6월로 접어들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전에는 AMD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채굴 성능이 떨어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소프트웨어로 이를 극복할 방법이 개발되면서 단숨에 수요가 급증했다.

물량이 부족하자 가격도 폭등했다. 메모리 용량 6GB 제품 기준으로 30만원 초반대였던 지포스 1060 제품의 가격은 실거래 가격이 40만원대까지 올랐다.

심지어 1060 제품이 부족하자 가격이 50만원대에 달하는 상위 모델 '지포스 GTX 1070'마저 채굴 시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시장에도 채굴용으로 쓸만한 그래픽카드만 전문으로 매입하는 업자들이 크게 늘었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전문 브랜드 조텍(Zotac)의 국내 관계자는 "이미 조텍을 비롯해 거의 모든 브랜드의 지포스 1060 제품군은 동이 난 상태다"며 "지금 생산 공장을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있지만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급량보다 주문량이 폭증한 상황이다. 언제쯤 물량 공급이 정상화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경우 채굴 전용 그래픽카드를 곧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구성을 단순화해 가격을 낮춘 대신 AS 기간도 대폭 줄이고 채굴 사업장에만 공급함으로써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인다는 것이다. AMD 역시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채굴용 모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가상화폐 시장의 과열 현상이 진정되기 전까지 '그래픽카드 대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