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왕립우주군', '톱을 노려라!', '에반게리온', '마호로매틱' 등 작품은 평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름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에서 '명작'이라 칭송받는 이 작품을 만든 곳은 놀랍게도 일본의 콘텐츠 전문 기업 '가이낙스(GAINAX)' 한 곳이다.
1984년 설립된 가이낙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선보인 후 대중에게 친숙한 회사로 자리 잡았다.
애니메이션 창작 집단 가이낙스를 만든 인물은 일본 현지서 오덕의 왕 '오타킹'이라 불리던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다.
오사카에서 SF 전문점 '제네럴 프로덕트'를 운영하고 당시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애니메이션 창작 집단 다이콘 필름(Daicon Film)에서 활동하던 오카다는 1987년 공개된 극장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王立宇宙軍 オネアミスの翼)' 제작을 위해 가이낙스를 설립했다.
일본 모형잡지 모델그래픽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장난감 전문 기업이던 반다이(Bandai)가 영상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바로 '왕립우주군'과 가이낙스의 오카다 때문이다. 오카다는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의 파일럿 필름과 기획서 및 영상 사업 계획서 등의 자료로 반다이 이사회를 설득했다.
◆ 회사 빚을 갚다가 명작을 탄생시킨 가이낙스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는 본래 왕립우주군 제작 후 해체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오카다를 필두로 가이낙스 주요 제작진이 예정보다 더 많은 비용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써 버리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
가이낙스가 빚을 갚기 위해 만든 두 번째 애니메이션은 SF명작으로 손 꼽히는 '톱을 노려라!(トップをねらえ!)'다.
1988년 등장한 '톱을 노려라!'는 영상미와 드라마성을 중시했던 1980년대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 콘텐츠의 금자탑이라 평가 받았으며, 1990년 우수 SF작품에 대해 상을 주는 일본 SF어워드 성운상(星雲賞)에서 미디어부문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SF 로봇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본래 목적인 회사 빚을 갚는데는 실패한다. 이유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또 다시 예상보다 높은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가이낙스는 회사 빚을 갚기 위해 애니메이션 '모데나의 검', 게임 '사일런트 메비우스' 등을 만들게 된다. 1997년 출간된 서적 '오타쿠 아미고스'에 따르면 이 시기 오카다는 창조적인 콘텐츠 보다 대중에게 잘 팔리는 콘텐츠 제작에 몰두했다.
애니메이션은 서커스 단원으로 성장한 소녀 나디아가 사실은 네오 아틀란티스 왕국의 왕녀이며, 수중 전투만 벌일 것 같았던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우주선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등 결말을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와 SF 마니아가 흥분할만한 내용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나디아는 프랑스 SF 소설가 쥘 베른(Jules Gabriel Verne)작 '해저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와 '신비의 섬(L'Île mystérieuse)'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캐릭터 디자인은 훗날 에반게리온 등장인물을 그린 사다모토 요시유키(貞本義行)가 맡았다.
가이낙스는 1995년 회사의 운명을 바꾼 글로벌 메가 히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을 탄생시킨다.
기계가 아닌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은 전기 케이블을 등에 꽂아 움직이며, 파일럿의 생각을 에반게리온에 싱크로 시키는 등 참신한 묘사와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망하는 암울한 내용,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연출로 어린이가 아닌 성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 정부(문화청)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을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에 선정하는 등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했다.
가이낙스는 1998년 안노 감독작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彼氏彼女の事情)', 2001년 야마가 히로유키(山賀博之) 감독의 미소녀 SF작 '마호로매틱', 2005년 사에키 쇼지(佐伯昭志) 감독의 미소녀 개그 애니메이션 '이것이(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これが私の御主人様), 2007년 슈퍼로봇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天元突破グレンラガン)' 등을 선보였다.
◆ 게임 제작사로도 유명했던 가이낙스
가이낙스는 대중들에게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기억되지만 '전뇌학원(電脳学園)'과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를 탄생시키는 등 1980~1990년대 게임 제작사로도 유명했다.
1989년 등장한 '전뇌학원'은 가이낙스가 극장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을 만들 때 생긴 회사 빚을 갚기 위해 기획됐다.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으로 제작된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 제작 노하우에서 얻은 당시로써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으로 인기를 얻었다.
전뇌학원을 만들었던 아카이 타카미(赤井孝美)는 미소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원조이자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탄생시킨다.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1991년 PC(PC-9801)용 플로피디스크 게임으로 출발해, 시리즈 최고 인기작인 1993년작 '프린세스 메이커2'를 거쳐, 2007년 '프린세스 메이커5'까지 다수의 작품이 등장했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게임을 소재로 한 2002년작 TV애니메이션 '쁘띠프리 유시(ぷちぷり ユーシィ)'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내 게임 제작사 엠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를 소재로 모바일 게임을 제작해 서비스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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