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비행기를 탔던 2000년대 초반엔 ‘한국 항공기 조종사의 실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말을 많이 자주 들었다. 외국 비행사와 달리 착륙할 때 부드럽게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비행기 착륙중 조금이라도 덜컹거리면 주변에서 ‘이번 조종은 외국인이 맡았다’는 식의 지적이 나왔다. 옆에 앉은 외국인을 보며 ‘한국 조종사의 실력 봤지?’라고 말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출장차 해외를 오가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는 물론 미국·유럽의 항공기도 탑승해봤지만, 착륙할 때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어떤 항공사 비행기를 타건 상관없이 착륙 충격을 자주 느꼈다. 한국 국적의 항공기 역시 착륙 충격이 상당했다. 일각에서 얘기하던 것들이 사실무근임을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한국인이 항공기 조종에 최적화 됐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외국인 조종사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오히려 콧방귀를 낄 일이다. 항공기 착륙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메커니즘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부드럽게 내려앉는다고 해서 무조건 실력이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항공기는 날개를 통해 만든 양력 덕분에 하늘을 난다. 양력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간단하게 말해 양력은 날개 위 기압을 아래쪽보다 낮게 해 동체가 위로 뜨도록 돕는 힘이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는 중 양력을 극대화해 공중으로 뜬다. 반대로 착륙할 때는 날개 아래쪽 기압을 위보다 낮게 만들어 고도를 낮추고 착륙시 이 양력을 완전히 없앤다. 바퀴를 활주로에 내린 후 양력이 남아있으면 제동을 시킬 수 없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방법은 크게 연착륙(소프트랜딩)과 경착륙(하드랜딩)으로 나뉜다. 연착륙은 항공기가 활주로에 충격없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것을, 경착륙은 약간의 충격과 함께 지면에 내려앉는 것을 말한다. 연착륙과 경착륙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착륙법으로 펌착륙(Firm Landing, 작은 충격 유발식 착륙)도 있다.
항공기를 착륙시킬 때 비행 속도를 무작정 줄일 수도 없다.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 양력이 사라져 자칫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착륙 속도는 ▲소형기 100노트(185km/h) 중형기 135노트(250km/h) ▲초대형기 145노트(269km/h) 쯤이다.
500톤쯤 되는 150노트 속도의 B747이나 A380을 착륙시키려면 긴 활주로가 필수다. 전문가들은 좋은 기상상황 기준으로 최소 2㎞ 이상은 돼야 안전하게 착륙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기상 상황이 나쁠 경우 제동 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2.5~3㎞의 활주로가 필요하다는 평가도 있다.
강풍시 바퀴를 활주로에 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측풍이 강할 때 항공기 기체는 활주로를 따라 정방향으로 내릴 수 없다. 바람 방향 쪽으로 기체를 튼 상태에서 동체 중심을 활주로 중간에 둔 채 착륙을 시도한다. 활주로와 항공기 기체가 45도 각도인 경우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기체가 좌우로 계속 흔들리는 상황이라 좌우 바퀴를 한번에 지면에 내리기 어렵다. 빠르게 내리지 않으면 활주로를 벗어날 수 있어 위급 상황으로 이어진다. 많은 조종사들은 승객이나 비행기 기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연착륙을 선호하지만, 기상 상황에 그대로 노출된 공항 내 활주로의 환경을 고려할 때 연착륙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공항마다 무한히 긴 활주로만 있다면 연착륙이 일반화될 수도 있지만, 정해진 짧은 활주로 내에 비행기를 세우려면 고도의 조종 능력을 활용한 경착륙이 필수다.
측풍 착륙 장면을 담은 영상. 일부 항공기는 경착륙으로 착륙에 성공하지만, 일부는 실패 후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 유튜브 갈무리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항공기 조종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필요에 따라 일부러 경착륙을 선택할 수 있으니 무턱대고 조종사 탓을 하지 말자. 작은 공항에 내릴 때엔 ‘경착륙을 하겠구나’ 생각하고 미리 충격에 대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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