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43) 리진 시선집 ⑤… 나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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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4.17 04:00
3주 차를 맞는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1주일에 5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리진 시인의 시선집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창작과비평사, 1999)를 골랐습니다. 리진은 1930년에 북한 함흥에서 태어나 김일성대 영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1년 모스크바로 유학갔다가 러시아에 눌러앉아 작품활동을 한 시인입니다. 평생을 이국땅에서 무국적자로 보낸 시인의 우리말 작품을 필사하면서 이전과 다른 독서 경험을 해 보세요. /편집자 주

리진 시인은 자신의 시를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나의 시에 뿌리를 둔 나의 시'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눈을 / 리진 (글자수 631, 공백 제외 517)

나의 눈을
마지막으로 감겨주고는
그리고는
더는 나를
보지 말아라,
네 기억에 송장이 남지 않도록,
네 기억에
산 날의 내가 남도록.

내 고향에서
구만리
가문비 밑에
조용히 묻고는
비석도 세우지 말라,
네 기억에 내가 백골로 남지 않도록,
네 기억에
산 날의 내가 남도록.

겨레들이
넋으로 해방되는 날이면
그들에게 전하여라
산 날의 나를.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오직 하나
그들의 축복을 빈
산 날의 나를,

더 큰 기쁨을 위하여
싸우면서도
낚시에 걸린 큰 고기에
기뻐 날뛰고
더 큰 불행에 분개하여
싸우면서도
우연히
밟힌 들꽃을
아쉬워하는,

인생의 보다 높은 뜻을
찾으면서도
때로 잔일에도 까다로워
너를 못살게 굴고
남의 맵자한 허리와
솟은 가슴에
눈을 팔아
괜히 너를 울게도 하는…...

산 날의 나를
겨레들에게 전하여다오,
그들이 나를 꾸짖도록 나무라도록,
그들이 나를 칭찬하도록 용서하도록,
나를
한 땅의
아들로
잊지 않도록.

네가 모르고
세상에서 거의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중한
우리말로 쓴
몇권의 공책을 겨레들에게 전하여다오,
산 날의 나를
나의 땅에 전하여다오.

너의 공책 없이도
산 나를 기억해주지
하긴 나는
아직도 오래 살련다,
산 나를 나 자신이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나
아, 세상일…...
네게 미리 부탁해둔다.

나의 눈을
마지막으로
감겨주고는
그리고는 더는 나를 보지 말아라.
네 기억에
송장이 남지 않도록,
너부터가
산 나를 기억하도록…...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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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은 (사)한국IT기자클럽, (주)네오랩컨버전스, (주)비마인드풀, (주)로완, 역사책방과 함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은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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