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 (45) 천변풍경 ①… 청계천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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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4.20 04:00
‘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1주일에 5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의 《천변풍경》을 골랐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활동하며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을 썼습니다. 한국전쟁 중 월북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외조부로 최근 재조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1930년대 서울의 풍속과 세태를 묘사한 《천변풍경》을 필사하면서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박태원은 ‘기교 작가’나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대표작 《천변풍경》은 1936년 8월부터 10월, 1937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朝光)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1938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천변풍경 ① (글자수 1050, 공백 제외 798)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 요새, 웬 비웃이 그리 비싸우?"
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눈, 코, 입이, 그의 몸매나 한가지로 모두 조그맣게 생긴 이쁜이 어머니가, 왜목 욧잇을 물에 흔들며, 옆에 앉은 빨래꾼들을 둘러보았다 .
"아니, 얼말 주셨게요?"
그보다는 한 십 년이나 젊은 듯, 갓 서른이나 그밖에는 더 안되어 보이는 한약국집 귀돌 어멈이 빨랫돌 위에 놓인 자회색 바지를 기운차게 방망이로 두드리며 되물었다.
(중략)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1930년대 청계천변 빨래터 사진.
"질기긴 외레 인조가 낫죠. 교직은 볼품은 있어두, 그저 첨 입을 그때뿐이지, 한 번 입으면 그만이니…"
그리고 다음은 상반신을 외로 틀어 흐응 하고 코를 푼다. 요란스러이 종을 울리며 자전거가 지난다. 인력거가 지난다. 그러나, 이곳, 천변길에 노는 아이들은 그러한 것에 결코 놀라지 않는다.
"글쎄 골목 안으루들 들어가 놀어라. 난, 그저, 가슴이 늘 선뜩선뜩허는구나."
이맛살을 찌푸리고 소리를 질러 일러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둘러보다가,
"참, 저건, 밤낮 애두 잘 봐."
점룡이 어머니가 하는 말에 그편을 돌아보고.
"잘 보지 않으면 그럼 어째? 매부 집에 와서 얻어먹구 있으려니, 그저 그럴밖에…"
이쁜이 어머니는 욧잇을 다시 한 번 흔들어서 빨랫돌에다 대고 연해 비빈다.
(중략)

"아니 그럼 이거 참 빨래 공짜루 허는 줄 알었습니까?"
갑자기 샘터 주인의 우락부락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편으로 눈을 주었다. 위에서 무새 빨래를 하였다고 아까 타박을 받은, 그, 낯설은 여편네가 이편 끝으로 내려와서, 하던 빨래를 대강 마치고서, 개천 둑에다 널판 쪽으로 비스듬히 짜놓은 사다리를 반이나 올라가고 있는 것을, 마침 빨랫줄을 매고 있던 샘터 주인이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스물너댓이나 그밖에는 더 안 되어 보이는 그 여인은, 잠깐 어리둥절하여 빨래터 주인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그러믄, 돈을 내요?"
어이없이 묻는 양이, 이곳 풍습에는 매우 어둔 듯싶다.


* 단어 풀이
-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 : 음력 정이월쯤 되면 날씨가 풀릴 것으로 알고 있으나 간혹 매우 심한 추위가 온다는 말. 꽃샘추위.
- 비웃 : 청어
- 왜목 : '광목(廣木; 무명 올로 당목처럼 폭이 넓게 짠 베)'의 비표준어
- 욧잇 : 요의 안쪽에 시치는 흰 천
- 인조 : 인조 견사로 짠 비단
- 교직 : 서로 다른 종류의 실들을 날실과 씨실로 사용해 짠 섬유
- 무새 : 물을 들인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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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한 작품을 5회로 나누어 싣고, 토요일에는 한 편으로 글씨쓰기의 즐거움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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